한국일보

추억의 명화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

2007-03-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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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

연민의 눈으로 그린 호스티스의 삶
염세주의 나루세 감독 감동의 명작

티내지 않고 섬세하고 민감하게 일본 서민들의 가정문제와 진부한 세상사 특히 여인들의 삶을 묘사하기를 즐겨한 미키오 나루세 감독의 1960년산 감동적인 작품이다. 나루세는 염세적이요 체념적 감각을 지녔던 사람으로 경제적 곤란과 돈벌이 등 물질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감독으로 억제하듯 가라앉은 예술적 솜씨 때문에 생전 제대로 평가를 못 받았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도 전후 먹고 살려고 발버둥치는 도쿄의 긴좌에 있는 바 호스티스 케이코다. 케이코(히데오 타카미네)는 처세술에 능하고 총명한 여자이지만 12층 바에서 밤마다 퇴근 후 들르는 사업가들을 즐겁게 해주는 호스티스라는 직업에 얽매여 살고 있다.
나루세는 케이코를 통해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독립하려는 여인의 투쟁과 갈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나루세의 사회적으로 분명한 의미를 지닌 심오하게 감정적인 명화다.
나루세는 가장 일본적인 감독이었던 야수지로 오주와 작품 성향이나 스타일이 비슷했다. 나루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잃고 학교를 그만 둬야했다. 어렸을 때부터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했는데 그가 서민 근로층의 얘기를 즐겨 다루는 까닭은 여기서 기인한다. 그의 영화에서는 늘 돈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나루세는 이런 배경 때문에 가족문제를 주로 다루는 영화의 대표적 감독으로 꼽힌다. 그의 영화들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하류 또는 중류층 봉급자들로 이들의 평범하기 짝이 없는 자질구레한 일상사가 자세히 묘사된다. 나루세 영화의 여자들은 돈이나 무책임한 남자 또는 자신을 착취하는 가족에게 시달리고 있어 역시 각박한 처지의 여자들을 동정의 눈으로 묘사한 켄지 미조구치의 여자들과 비교되고 있다.
나이 먹어가는 미망인 케이코는 싸구려 바에서 일하며 자신의 위엄을 잃지 않으려고 애쓴다. 어머니와 오빠와 오빠의 지체부자유자인 아들을 먹여 살리는 케이코의 꿈은 자기 바를 여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남자들의 비위를 맞춰 줘야 하나 술에 취해 다가오는 남자들에게 엄격한 거리를 둔다. 40달러. Criter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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