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 ‘돈의 소중함’

2007-02-1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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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욱이 기숙사에서 필요한 서류 한 묶음을 받아들었다. 뭐가 이리 복잡한지. 하루 동안 준비해서 보낼 서류가 아니다. 피검사, 변검사, 의사 소견서, 병원기록까지… 갑자기 서글픈 생각이 든다. 승욱이는 아무 것도 모르는데 엄마는 모든 것을 결정하고 승욱이를 기숙사로 보낼 생각을 하고 있으니 승욱이가 나중에 얼마나 혼란스러워 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여기저기 일자리를 알아보지만 풀타임 일이라 승욱이 학교 옮기는 일로 인해 당분간 풀타임일은 곤란할 것 같다. 파트타임 일을 알아보는 중에 친한 집사님 가게에 일하는 학생들이 단기연수를 가게 되었다고 몇 주만 가게 일을 봐달라고 해서 선뜻 하겠다고 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간 낮 시간은 파트타임 일을 시작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은 모두 앉아서 사무를 보는 일을 했었다. 결혼 전에는 큰 보험회사에서 고객 상담실에서 근무를 했기 때문에 사실 힘든 일을 해보지 않았었다.
하루 반나절을 서서 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서빙을 하면서 사람들의 비위를 맞춰 주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것인지, 쌓여 있는 유리그릇 깨뜨리지 않고 조심스럽게 설거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처음 보는 메뉴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대학시절, 우리 삼남매는 아버지가 유공자이셨기 때문에 모두 장학금을 받고 대학을 다녔다. 그런데 유공자 자녀라고 모두 장학금을 주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의 학점을 넘지 못하면 한 학기 장학금은 날아가는 것이다. 다행히도 언니와 나는 무난히 장학금을 모두 받고 졸업을 했지만 오빠는 한 번의 장학금을 놓치게 되었다. ‘쯧쯧쯧. 너무 놀 때 알아봤지.’ 속으로 쌤통이다 그런 생각으로 난 여름방학 교양강좌를 유유히 들었지만 오빤 그해 여름 아버지의 불호령으로 조간과 석간신문을 돌렸다.
초입으로 들어온 어수룩한 청년 대학생을 좋은 동네를 배달시킬 리 없다. 오빠는 산동네 그것도 자전거 한 대가 겨우 지나가는 골목동네를 하루에 두 번 신문을 날랐던 것이다. 거기다 낮에는 신문대금을 수금하면서 개한테 물리고 언덕에서 자전거 타고 내려오면서 넘어져 다치고 비오는 날 신문 젖지 않게 하려다 온몸이 멍이 들고, 신문이 배달되지 않았다면 다시 언덕 산동네를 오르내리며 여름 내내 신문을 배달했다.
어느 날, 난 여름학기를 듣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고, 오빠는 퉁퉁 불어터진 발을 질질 끌며 땀에 흠뻑 젖어 낡아빠진 자전거를 몰고 오는 중에 나는 오빠를 만나게 된 것이다. 검게 그을린 얼굴이 도저히 나의 오빠라고 알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나를 만난 것에 반가웠는지 이를 드러내며 웃는데 까만 얼굴에 누런 이, 영판 없는 노무자의 얼굴이다. 난 “오빠, 얼굴이 그게 뭐야” 그때 오빠는 “이렇게 땀 흘려 일해 보지 못한 사람은 돈의 소중함을 모르는 거야. 오빠 요즘 많이 배운다. 재밌고 보람 있어. 신문보급소 소장님이 성격이 좀 그런데 나중에 내가 사회 나가서 좋은 사람만 만난다는 보장도 없잖아. 장학금 덕에 좋은 공부하는 것 같아.”
쌓여있는 그릇을 닦는데 설거지통에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그때 10년도 훨씬 전에 오빠가 나에게 해주었던 말이 오버랩 되면서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일이 힘들어서, 사람들에게 창피해서, 내 자존심이 상해서 우는 것이 아니다. 감사해서 우는 것이다. 감사해서 그저 눈물이 난다.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건강한 육체를 주신 하나님께 그저 감사, 감사할 뿐이기 때문이다.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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