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7-02-0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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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이루는 밤

승욱이 학교를 다녀온 날 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고민 한번 하고, 기도 한번 하고, 걱정 한번 하고 기도 한번 하고 이 엄마가 무얼 고민하는지 우리 승욱이는 전혀 관심 없이 이 밤도 새벽이 오기까지 열심히 놀고 있다.
승욱이를 키우면서 제일 힘든 건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일을 결정하는 것에 있다. 비교할 대상도 같은 상황에 다른 장애아동도 주변에 없기 때문에 승욱이의 모델은 없다. 하지만 비교의 대상도 그 어떤 좋은 모델도 보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승욱이는 잘 성장해 왔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다니는 학교를 한해 더 다니게 해 달라고 떼라도 쓰고 싶지만 벌써 그건 두 해나 써 먹은 거라 이번엔 무조건 옮겨야 한다.
미국은 모든 교육이 완벽하다고 생각했지만 승욱이에겐 약간의 예외조항이 붙나보다. 시각, 청각, 언어장애를 모두 만족할 학교가 없다니.
에너지를 다 뽑고서야 승욱이가 드디어 침대에 엎드려 잔다. ‘어이구, 이 어린 것을 어디로 보내라는 건지, 말도 안 돼. 어디든 나와 함께 있는 거야. 난 승욱이 엄마니까.’
승욱이 옆에 누워 잠을 청하려하니 낮에 교장 선생님이 한 말이 자꾸 머리를 때린다. ‘승욱이는 준비가 된 아이야. 승욱이가 얼마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인지. 넓은 세상으로 나가야해.’
교육적인 면에서는 난 학교 선생님들을 100% 신뢰하고 지난 5년간을 함께 했다. 나보다 승욱이를 더 잘 알기 때문에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강약을 조절하며 선생님들이 승욱이를 가르쳐서 이만큼 키워온 것이다.
그런 선생님들의 조언을 한국 사고방식에 꽉 잡혀 있는 이 엄마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고민 고민하고 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서야 난 교장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교장선생님은 “고민했지?” 전화는 내가 걸었는데 말도 못하고 버벅거리며 “학교를 결정했어. LA에 있는 시각장애 학교로 보내는 걸로.” “그 곳에 가려면 기숙사를 이용해야 하는 거 알지?” 난 “내가 차로 데려다 주면 안 될까?”
교장선생님은 일단 교육구와 기숙사와 승욱이가 갈 학교 모든 곳에 전화를 걸어보고 전화를 다시 주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은 지 얼마 후 바로 교장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기숙사는 대기자가 8명이나 있고, 기숙사가 결정이 돼야 학교에 서류를 보낼 수 있다고 했다.
‘아, 이것이 하나님 뜻 인가보다. 시작부터 브레이크가 걸리는 것을 보니 승욱이가 기숙사로 가는 것은 하나님 뜻이 아닌가 보네. 음, 그럼 그렇지. 기숙사 핑계 대고 그냥 내가 학교를 데리고 다닌다고 밀어붙여야지. 하나님, 이번엔 응답이 너무 빠르셨어요. 호호호.’
마음으로 내심 흐뭇한 미소를 짓는 것도 잠시 여러 가지 또 다른 폭풍이 오는 것을 전혀 알리가 없는 내가 나름대로 승욱이에 대한 멋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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