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 이야기

2007-01-2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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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의 시간

승욱이의 초등학교 결정을 못하고 계속 날짜만 가고 있다. 스쿨버스로 갈 수 있는 거리의 일반초등학교에 특수학급이 있는 곳으로 마음 한 구석에 결정을 하고 학교 선생님들이 어떻게 결정을 했냐고 물을 때까지 함구하고 있는 중이다. 조금 더 생각을 하려고 사실 시간을 벌고 있는 참이다. 그런 와중에 승욱이 담임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빠른 시일 내에 학교로 한번 방문을 해달라고 한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교장선생님과 트리샤 그리고 승욱이 담임인 헤내카다. 우리 네 사람은 아무도 없는 어두운 교실에 아이들이 앉는 작은 의자에 둘러앉았다.
교장선생님까지 날 기다리고 있는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진지한 얼굴로 교장선생님이 먼저 말문을 연다. “학교는 결정했니?” 난 “아니”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자신 없게.
교장선생님은 “그런 것 같아서 오늘 불렀어. 우리의 생각을 말하고 싶어서. 승욱이 학교 결정을 위해 얼마 전에 우리 선생님들끼리 미팅을 했었어”
난 가만히 교장선생님의 의견을 듣고 있었다. 백인 할머니 교장선생님은 6년 가까이 봐 오지만 언제나 차분하고 지적이며 사랑이 많다. 승욱이의 편에서 모든 것을 도와준 승욱이를 너무 사랑하는 분 중에 한 분이시다. 그 분이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말문을 여신다.
“2주 전에 북가주를 다녀왔어. 헬렌 켈러 재단이 있는 곳에 세미나가 있어서 갔는데 그 곳에서 난 너무 훌륭하게 성장한 한 청년을 만났지. 그 청년은 승욱이와 같이 앞도 못보고 전혀 듣지 못하는데 아파트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더라고. 물론 가까운 곳에 그 청년을 도와주는 분이 살지만 거의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하면서 살고 있는 청년을 만나 이야기를 하게 되었어. 어려서부터 훈련을 통해 자립하게 되었고, 지금은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닌데.”
난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했다. “난 그 청년을 만난 후에 승욱이 생각을 많이 했어. 과연 우리 승욱이도 저 청년처럼 멋지게 성장할 수 있을까? 그 청년보다도 승욱이는 와우이식 후에 듣기까지 하니 더 좋은 조건인데 말이야.” 그리고 이어서 교장선생님이 말했다.
“우리 선생님들의 의견을 말하자면 승욱이를 사립 기숙사에 보내고 근처에 시각장애학교를 보내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아. 어차피 시각장애학교가 LA 통합교육구 공립학교이기 때문에 그쪽 교육구에 살지 않으면 학교 보내기가 어렵잖아.”
난 “승욱이가 기숙사로 가기엔 너무 어려”라고 답했고 교장선생님은 “승욱이는 어리지 않아.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준비가 된 아이야. 내가 북가주에서 만난 청년도 어려서 부모가 독립을 시켰기에 저 정도로 성장한 거야. 하루아침에 저렇게 독립할 순 없어. 먼 곳으로 기숙사에 보내는 것이 아니고 같은 LA야”
“승욱이에게는 사랑이 더 필요해. 더 안아주고 더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말도 가르치고 중학교 때 보내고 싶어.”
사랑이 많고, 승욱이를 제일 잘 안다고 생각했던 선생님들인데 오늘은 너무 냉정하다 못해 말소리가 싸늘하다. 일단 하루만 더 생각하고 내일 전화를 걸겠다고 그 자리를 일어났다.
서둘러 나오는 나의 뒤에서 교장선생님은 “나도 많이 생각했다. 마음 아프게 그리고 섭섭하게 생각하지마.”
마지막 말은 하지 말지. 괜히 또 사람 눈물 나게 하고 그러냐.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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