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도나에서 온 편지 하발리나 퍼레이드

2007-01-2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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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해거름 무렵, 집 앞의 골프코스를 따라 산책을 하다가 또 그 녀석들을 만났다.
여덟이나 무리를 지어 나타났는데, 지금까지 내가 만난 녀석들 중에서는 제일 굼뜬 것 같다. 요즘 세도나 답지 않게 기온이 뚝 떨어져서 나는 목도리를 칭칭 감고 종종걸음을 치고 있는데, 녀석들은 두리번두리번 어슬렁어슬렁 만사태평 산책로를 횡단중이다.
녀석들에게 길을 비켜주는 동안, 나는 겅중겅중 제자리 뜀박질을 해야 했다.
이 녀석들이 그 유명한 세도나의 하발리나(javelina)다. 언뜻 보면 작은 집돼지나 멧돼지같이 생겼지만, 뿌리는 전혀 달라서 페커리(peccary)과에 속한다고 한다.
통통한 몸집에 짧은 다리, 길게 튀어나온 주둥이에 큰 송곳니를 달고, 길고 뻣뻣한 털로 무장한 이놈들을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이른 아침이나 어스름한 저녁에 둘에서 많게는 스물까지 무리를 지어 나타나는 이놈들은, 스컹크 못지않은 고약한 냄새를 풍기지만, 코믹하고 친근한 생김새 때문에 세도나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다.
레드락과 덤불 사이를 어슬렁거리던 하발리나들은 2년 전에 세도나의 메인 스트릿으로 진출했다.
세도나 상공회의소와 세도나 아트 페스트벌의 공동 프로젝트인 ‘하발리나 퍼레이드’(Javelinas on Parade)로 부활한 것이다.
몸집이 큰 놈과 작은 놈을 한쌍으로 하여, 이름도 색깔도 제각각인 하발리나 조각을 세도나 시내의 레스토랑, 갤러리, 호텔 로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세도나 유일의 영화관인 하킨스 극장 로비에 가면 팝콘 더미 위에 올라서 있는 턱시도와 드레스 차림의 하발리나를 만날 수 있다.
핑크 지프 투어 앞에는 핑크빛 살결을 민망하게 드러낸 하발리나 한 쌍이 서 있다. 하나같이 코믹하여 웃음을 자아낸다. 하발리나 퍼레이드는 2006년 “애리조나의 보물” 중의 하나로 선정되었다.
이들 하발리나는 2007년까지 시내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가 경매에 부쳐 세도나의 예술인들을 후원하는 데 쓰여진다.
세도나는 아름다운 바위의 도시일 뿐만 아니라 문화와 예술의 도시이다.
인구 1만밖에 안되는 소도시지만, 카페에서 옆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뭘 하냐고 물어보면 열에 셋은 작가나 음악가나 화가라고 한다.

오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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