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 이야기

2007-01-2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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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어 !

승욱인 치과 치료를 다 받고 이 뽑은 상처까지 다 아물었는데도 먹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원래 밥 먹는 것과 잠자는 것이 항상 문제의 요소였지만 이번에는 좀 심하다. 입을 한번 굳게 다물면 좀처럼 열지를 않으니 무엇을 만들어줘도 무용지물이다.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지 않으니 학교 선생님들도 소아과를 한번 데리고 갔으면 하고 편지가 왔다.
스쿨버스에서 내린 승욱이를 바로 차에 싣고 소아과로 직행. 소아과 선생님은 이곳저곳을 살피지만 특별히 아픈 곳은 없는 것 같다고 하셨다. 그럼 무엇이 문제인고?
소아과 선생님의 특단의 조치는 ‘일단 굶기기’로 처방을 내려주셨다. 굶기기? 과연 시행할 수 있을까?
경상도 친정아버지는 우리 삼남매가 한 밥상에 둘러 함께 밥을 먹지 않으면 어떤 예외조항도 없이 밥상을 치우게 하셨다.
별명이 ‘삐순이’였던 내가 뭔가에 삐져서 밥을 먹지 않는다고 으름장을 놓으면 엄마는 살살 달래서 밥을 먹이려 했지만 아버진 “밥이 빌러가나, 묵지마라. 안 묵으면 지만 배고프지” 그래서 우리 삼남매는 밥만큼은 그저 군소리 없이 먹고 자랐다.
그런데 이건 내 자식이 밥을 먹지 않고 저리 있으니 애간장이 녹아도 이만저만 녹는 것이 아니다. 건강한 큰 녀석이 저리 안 먹으면 나도 우리 아버지처럼 예외 없이 밥상을 치웠겠지만 승욱인 좀 다른 것 같다.
소아과를 다녀온 뒤 친정엄마에게 승욱이를 굶겨야겠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더 걱정이시다.
난 승욱이의 양 팔뚝을 붙잡고 알아듣든 못 듣든 “승욱, 네가 지금 엄마에게 뭔가 시위를 하고 있는지 어쩐지 엄마는 모르겠지만 오늘부터 굶어, 알았지? 너 나름대로 금식을 하든 말든 네가 정상적으로 밥 먹을 때까지는 노 푸드(No food)!”
일단 독한 맘먹고 아무 것을 주지 않고 저녁시간이 되었다. 연신 수화로 나에게 주스를 달라 과자를 달라 요구사항이 긴급해졌다. “아니 안돼” 내 손을 잡아끌어 자기 입술에 대고 먹을 것을 달라고 한다. 한참을 기다렸다가 밥을 주니 고개를 획 돌린다. “흥, 아직 배 않고프지? 더 굶어.”
수화로 나에게 의견 전달이 되지 않으니 이젠 울기 시작이다. ‘징징징, 잉잉잉, 으앙~’ 마음 같아선 승욱이가 좋아하는 새우깡, 감자깡, 고구마깡(승욱이는 주로 깡 종류를 좋아한다. 그래서 저리 깡이 센가?)을 주고 싶지만 이번에 밥 먹는 버릇을 고치지 않으면 다들 고생할 것을 생각하면서 우직하게 버티고 있다.
새벽이 다 될 때까지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다가 눈물을 주르륵 흘린 채 승욱이가 잠들었다.
다행히 학교 교사 연수가 있는 바람에 다음 날은 승욱이가 학교를 가지 않는다. 다음 날도 먹을 것을 찾으며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 그 다음날은 완전 포기하고 주는 밥을 어미 새가 물어온 먹이를 새끼 새가 받아먹듯 입을 쩍쩍 벌리며 받아먹는다. 밥을 먹으면서도 뭐가 슬픈지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다.
이틀을 굶기니 문제가 해결되었다. 세상에 이런 매정한 엄마가 있나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요즘 예전과 다르게 아이들이 먹지 않아서 엄마들이 하루 종일 밥숟가락을 들고 애들 쫓아다니는 집을 많이 보았다.
먹는 것이 너무 흔한 요즘, 과자나 캔디가 어디에서나 넘쳐나는 요즘 아이들이 밥맛이 입에 들기 전에 단맛을 먼저 입에 들이니 밥 보기를 아주 돌보듯 한다.
역시 우리 승욱이도 마찬가지. 그럴 땐 이 방법을 한번 강추(강력추천)하고 싶다. “굶어!”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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