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 이야기

2007-01-1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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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욱아, 이가 아프니? (하)

마음이 급하면 왜 이리 날짜는 더디 가는지 모르겠다. 승욱이 치과 예약을 기다리는 2주가 2달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승욱이 학교 선생님들도 언제 병원이 예약되었는지 묻고 묻고 또 묻고.
잠에서 덜 깬 승욱이는 연신 내 몸에 기대어 잔다. 두리번두리번 이제나 부르나 저제나 부르나 그때 “어, 저사람, 그 사람 아닌가? 지난번 우리를 도와줬던 그 의사 선생님? 분명 지난번이 마지막 진료라 했는데” 콧물까지 찔찔거리며 울던 내 모습이 갑자기 창피한 생각이 들어서 몸을 살짝 돌려서 다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오셨군요. 아침에 확인해 보니 안 오셨기에 간호사에게 전화 걸어보라고 했어요. 무슨 일 있는 줄 알구요.” 난 계면쩍은 얼굴로 “네, 그게 차가 막혀서 그랬어요” 의사는 “승욱이 저에게 주세요. 간밤에 먹은 거 없죠? 아침에 온 환자가 많이 밀려 있어요. 제가 데리고 들어갈 게요”
커다란 의사에 넙죽 안긴 승욱이는 누가 자신을 데리고 가는지도 모르는가 보다. 분명 소독약 냄새로 느낄 텐데 의외로 얌전하다. 진료실 안으로 들어간 지 몇 초 후 갑자기 괴성이 들리기 시작한다. “미안 승욱아 빨리 치료하고 집에 가서 맛난 거 먹자”
승욱이의 소리가 잠잠해졌다. 본격적인 치료에 앞서 의사 선생님이 오늘 어떻게 치료를 할 것인지 나에게 브리핑을 해준다.
한 시간, 두 시간. 승욱이보다 늦게 들어간 아이들은 전부 나오는데 승욱이는 아직 소식이 없다. “치료할 것이 무진장 많은가 보네.”
세 시간이 넘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1시가 되어간다. 진료실 안을 기웃기웃하니 들어와도 된다고 간호사가 손짓을 한다. 진료실 안에 승욱이만 남아 있다. 마취에서 깨지 않은 채로 누워 있는데 입안 가득 솜을 물고 있다. “도대체 이를 몇 개를 뽑은 거야?” 치료를 맡은 미국 의사에게 이를 몇 개 뽑았냐고 물었다. 의사는 8개라 답한다. “네? 8개라니, 어이구 우리 애를 어떻게 한 거야. 어떻게 한꺼번에 8개의 이를 뽑을 수 있지?”
난 미국 의사를 붙잡고 아직 애가 나이가 어린데 어떻게 한꺼번에 8개를 뽑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지금 유치를 제대로 뽑지 않으면 나중에 영구치도 썩어서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치료 하는 김에 한 번에 치료를 했다고 했다. 아이에게 무리가 가지 않을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승욱이가 마취에서 깨려고 한다. 마지막 환자이기 때문에 의사들도 간호사들도 서둘러 마무리를 하는 것 같다. 난 침통한 얼굴로 “오늘 승욱이에게 무슨 일 나기만 해봐라. 이렇게 성의가 없을 수 있어?”
마무리를 하고 나가는 미국 의사와 간호사에게 “애 입에서 자꾸 피가 나는데 이렇게 두고 나갈 수 있어요? 뭔가 조치를 취해 줘야죠?”
내 뒤편에서 “어? 승욱이 어머니 영어 잘 하시네요. 저는 영어를 전혀 못하시는 줄 알았어요.” 한국 의사가 어디에선가 나타났다. “네? 영어요? 병원 영어는 좀 하는 데요” “그렇구나. 난 전혀 영어를 못 하시는 줄 알고 오늘 일부러 여기 온 거예요.” “네? 일부러요?”
그랬다. 한국 의사 선생님은 오늘 승욱이와 나를 위해 이곳에 일부러 와 주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신의 둘째 아이도 한쪽 귀를 전혀 듣지 못한다고 했다. 승욱이를 보고 한국 아이에다가 장애가 있는 것을 보고 그냥 마음이 우리를 향했다고 했다.
승욱이는 입안 가득 솜을 물고 병원을 나왔다. 마치 권투시합을 금방 마치고 돌아가는 얼굴 퉁퉁 부은 권투선수 같은 모습이다. 승욱이 모습이 권투선수 같으니 왠지 오늘 멋진 권투경기를 한 게임 한 듯하다. 어디가나 곳곳에서 좋은 분들을 만나게 되니 이 얼마나 멋진 경기인가.
앓던 이를 쑥 뽑고 병원으로 올 때와는 반대로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며 “승욱아, 세상에 참 좋은 분들이 많지? 너도 커서 저렇게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심장을 갖길 바래.”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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