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혼의 죄책감서 벗어나세요”

2007-01-1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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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의 죄책감서 벗어나세요”

남들에게도 재혼 부부임을 공개하고 당당히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아름다운 제임스·수잔 이씨 부부.

“이혼의 죄책감서 벗어나세요”

부부란 함께 노력하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제임스·수잔 이씨 부부.

재혼 12년 제임스·수잔 이씨부부

쉽지 않을 거라고, 99%는 퇴짜 맞을 각오를 하고 수화기를 들었다. 안방 이야기가 담을 넘으면 안 된다는 우리식 정서는 그렇다손 쳐도 이혼한 뒤 재혼한 부부가 미 전국에 나가는 신문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리 만무하다고 지레 겁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웬걸. 이들 부부 1시간여의 상의와 고민 끝 ‘다른 재혼 부부들에게 우리의 이야기가 도움이 된다면, 이혼한 이들에게 삶의 희망이 될 수 있다면’이라는 전제로 조심스레 인터뷰에 응했다. 재혼한지 이제 12년, 주위에서 ‘참 드물게 아름다운 부부’라고 추켜세우지만 이혼이든 초혼이든 결혼한 부부의 10년 일상이 어디 쉽고 깡충깡충 뛸 만큼 즐겁기만 했겠는가. 서로 노력하고, 보듬고, 공부하고 달려온 12년 결혼생활의 ‘비법’을 들어봤다.

전 배우자 자식문제 큰 시련
‘좋은 아저씨 아줌마’로 만족하고
원만한 생활위한 5계명 세워 실천


◇고난은 행복의 가장 큰 스승

요즘 한인사회에 ‘세쌍 중 한쌍은 이혼’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돌아다닐 만큼 이혼율도 늘고, 실제로 주변에서 연령대를 불구하고 이혼남, 이혼녀를 쉽게 볼 수 있을 만큼 이혼은 빅 이슈가 아니게 돼 버렸다. 그러나 한 개인사에 있어 만천하에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살겠다’는 약속을 저버린 것은 엄청난 상처다. 혹여나 남들이 알까, 자녀들에게 너무 큰 상처를 주게 되는 것은 아닌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인생의 실패자가 되는 것은 아닌지 등등 수없이 많은 자문에 부딪쳐야만 한다.
제임스(58)·수잔(50) 이씨 부부 역시 전 배우자들과 10년이 넘는 결혼생활 끝 내린 이혼의 결정은 이들 인생의 큰 상처였고 아픔이었다.
특히 수잔씨는 심적 갈등과 정신적 충격으로 이혼 후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 삶을 포기할까도 생각할 만큼 힘이 들었다고. 그래서 한동안은 다시 결혼할 생각은 꿈도 꾸지 않았고 제임스씨 역시 당시 막 사춘기에 접어든 두 아들을 위해 아이들이 대학에 갈 때까지는 재혼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 이들의 표현대로라면 ‘하나님께서 계획한 바에 의해’ 우여곡절 끝에 만났고 만난 지 두 달만에 ‘전격’ 결혼식을 올렸다.
“집사람을 처음 봤을 때 내가 차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워낙 예쁘고 총명한 사람이어서 말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두 번인가 세 번쯤 봤을 때 차를 타고 오면서 불현듯 수잔을 하나님이 제게 보낸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그리곤 결심했죠. 이 사람하고 결혼해야겠구나 하고 말입니다.”
수잔씨 역시 이혼 후 더 깊어진 신앙으로 인해 ‘제대로 선교를 하려면 배우자가 있어야겠다’는 걸 절감하던 순간이어서 이 남자라면 같은 길을 걸어도 되겠지 싶어 결혼을 결정했다.
한번 실패의 상처를 간직한 사람들이어서 더 조심스런 결혼이었지만 한번의 실패로 더 인생에 대해 사랑에 대해, 부부에 대해 잘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이들을 다시 한번 생의 의욕에 넘치게 했다.

‘굴러들어온 돌’3년 냉가슴

참는 것만이 능사아닌
부부 중심 가정 운영
뒤늦게 깨달아 아쉬워


◇가장 큰 시련은 자녀문제

덕분에 이씨 부부는 12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을 함께 했지만 둘 사이엔 특별한 문제나 갈등 없이 지금껏 달려왔다. 그러나 모든 재혼 부부들이 그렇듯 이들의 가장 큰 난관은 바로 자녀였다.
재혼한 후 제임스씨 아들 둘과 함께 생활한 부부는 지금까지 크고 작은 문제에 부딪쳐 아파하고 갈등하고 때론 ‘정말 재혼한 게 잘한 걸까’ 자문하게 할 만큼 힘에 부쳤다.
“아이들이 아빠하고만 상의하거나 어떤 결정을 할 때 가장 서운했습니다. 잘 살고 있는 삼부자에 내가 굴러들어온 돌 마냥 어색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해 가장 힘이 들었습니다.”
제임스씨는 이미 이혼한 아빠라는 죄책감에 아이들이 무작정 해달라거나 결정을 요구할 때 ‘그러마’ 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게 어떤 결정이 됐든 수잔씨는 내용과 상관없이 그 문제해결 방식에 소외감을 느껴야만 했다. 그렇지만 실패를 다시 반복하기 싫어 수잔씨는 3년을 무작정 내색 없이 참았다고 한다. 그러나 참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고.
“교회에서 가정사역을 담당하는 목사님과 공부하고 상담을 받으면서 부부간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작정하고 이야기를 시작했고 남편은 깜짝 놀라더군요. 제가 그 정도까지 힘들어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는 거죠.”
그러면서 부부는 가정의 중심은 부부이며 모든 걸 부부 중심으로 가정을 운영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이 아이들과 진지하게 얘기해 모든 가정 내 문제는 엄마·아빠가 공동으로 결정해야 하며 부부의 책임 하에 운영돼야 한다는 걸 말해줬습니다. 그리고 아이들도 충분히 이해했고 지금껏 문제없이 잘 자라줬습니다. 참 고마운 일이죠.”
그 사이 어느새 형제는 다 자라 장남은 사회인이, 둘째도 대학생이 돼 버렸다. 이들 부부가 가장 아쉬운 점도 너무 늦게 깨달은 덕분에 아이들과 알콩달콩 관계를 키울 새도 없이 시간이 흘러가 버렸다는 데 있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임을 이들은 끊임없이 강조했다.

이씨 부부가 말하는 재혼부부 5계명


① 죄책감에서 벗어나라
독실한 크리스찬인 제임스씨는 이혼한 뒤 재혼 후에도 늘 기도할 때면 이혼한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기도 속에서 ‘네 죄가 이혼뿐이 아니라 수도 없이 많지 않느냐’는 음성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수잔씨 역시 이혼 후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이혼녀로 손가락질하는 것 같아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이혼은 정말로 가능하다면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교통사고처럼 누구나 닥칠 수 있는 일’이라고 자신에게 힘을 줘야 한다고 말한다.

② 서로의 차이를 인정해라
초혼이든 재혼이든 부부란 전혀 다른 성장과정과 성격과 가치관을 가진 이들이 만나 한길을 가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다르다는 전제하에 그를 충분히 인정하고 수용하면서 결혼생활을 해야 한다고 이들은 입을 모은다.

③ 결혼생활에 대해 공부해라
제임스씨는 인터뷰 내내 공부를 강조했다. 전혀 다른 남과 사는 일인데,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인데 공부하지 않고는 원만한 결혼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남녀가 어떻게 다른지, 왜 부부간 대화가 중요한지, 재혼 후 자녀양육 문제는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 교회에서 운영하는 교실이든 책이든 다양한 경로를 통해 끊임없이 공부할 것을 강조했다.

④ 전 배우자의 자녀들에 좋은 아저씨·아줌마로 만족하라
제임스씨는 “재혼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전 배우자의 자녀들에 대해 해줄 수 있는 최선은 바로 좋은 아저씨, 좋은 아줌마가 돼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과도한 기대와 집착은 오히려 관계를 깨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⑤ 재혼 사실 당당히 공개하라
물론 이혼은 애당초 하지 않으면 가장 좋다. 그러나 재혼한 부부의 경우 이 사실을 남이 알까, 행여 들킬 새라 대인관계를 기피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 많다.
그러다보면 부부 사이는 물론 자녀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따라서 떠벌릴 필요는 없지만 친한 모임이나 그룹에서는 시작 전에 이야기를 해두는 것이 남들보다는 부부를 위해 현명한 처사라는 것이 이씨 부부의 조언.

<글 이주현 기자·사진 진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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