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7-01-0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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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욱아, 이가 아프니? (상)

승욱이가 밥을 먹지 않는다. 목이 마를 때만 간간이 주스를 마실 뿐 씹어 먹는 음식은 냄새만 한참을 맡을 뿐 먹질 않는다. 입안에 잔뜩 바람을 불어 물고 뚜래질을 자주한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째 밥을 안 먹으니 뭔가 심각한 일이 일어난 것 같다.
저녁에 이를 닦이려고 억지로 입을 벌려보니 이가 많이 썩어 있다. 잇몸까지 부어올라 빨리 치과에 가야 할 것 같다. 메디칼이 중단된 상태라 급한 마음에 메디칼 사무실에 전화를 거니 메디칼을 새로 신청하라고 한다.
무진장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니 헬스패밀리 프로그램을 신청하라고 했다. 부랴부랴 헬스패밀리를 신청하고 치과를 지정하는 데만 한달 보름이 걸렸다. 휴….
지정 치과에 가니 작은 병원이라 승욱이를 치료할 수 없다고 UCLA로 가라고 한다. 보험회사에서 UCLA로 갈 수 있는 승인서를 받기까지 한달 반이 갔다. 느려터진 미국 행정에 엄마 속은 터지고, 오래 기다리면서 승욱이 이는 다 썩어 내려앉았다.
UCLA 치과에 전화를 걸어 2시간 만에 겨우 예약을 했다. 아주 급하다고 몇 번을 설득하고 사정한 끝에 2주 후로 겨우 예약 날짜를 잡았다.
승욱이는 여전히 먹질 못한다. 내손을 계속해서 자기 입술에 갖다 대고 뭐라고 표현을 하는데 나에게 이가 아프다는 표현을 하는 것 같다.
예약날 아침 서둘러 병원에 도착했다. 내가 한국 사람인 것을 알고 한국 레지던트를 담당 의사로 지정해 주었다. 한국 의사는 승욱이 이를 먼저 보자고 했다. 병원에 오면 승욱이는 언제나 병원에서 시달린 기억으로 인해 뒹굴면서 우는 것이 특기다. 오늘도 의사가 승욱이 손을 만지자 뒹굴며 울기 시작한다. 다른 젊은 의사들이 달라붙어 진정을 시키려 해도 버둥버둥, 결국 판자에 꽁꽁 묶이고 말았다.
‘그러길래 조금만 참지… 주사맞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를 보려고 하는 건데 뭐가 무섭다고 그러냐, 아픈 것은 잘 참으면서 검사하는 것은 절대 못 참는 우리 아들…’
꽁꽁 묶인 승욱이가 치료 받아야 할 이가 몇 개인지를 의사가 세기 시작했다. 전체를 다 치료해야 한다고 한다. ‘오늘 일찍 집에 가기는 틀렸네.’
의사는 이가 이렇게 될 때까지 뭐했냐고 나에게 물었다. 엄마인 죄로 또 얼굴 빨개져서 ‘변명’하자 의사는 어느 정도 이해를 하는 눈치다.
의사에게 “오늘 치료하는데 얼마나 걸리나요?” 묻자, “오늘 치료는 못 한다”는 답이 돌아온다. 의사는 승욱이는 전신 마취를 해야 치료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소아치과 마취 환자는 매주 수요일에만 가능하다고 했다.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뚝 하고 떨어진다.
“세달 하고도 2주를 기다려 오늘 여기 왔어요. 무슨 승인서 받기가 그리 어려운지, 무슨 병원 예약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지, 무슨 치료 받는 것이 그리 어려운지. 애가 아프다고 말도 못하는데 이렇게 또 가서 예약하고 다시 오라구요? 오늘 그냥 치료해 주세요”
판자에서 풀려난 승욱이 눈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지 덩치 커다란 애 엄마는 엉엉 울고 있지. 의사의 표정이 난감 그 자체다.
의사는 “오늘은 마취과 의사도 없어요. 제가 예약 받는 곳에 가장 빠른 날짜를 잡아달라고 부탁 할게요. 울지 마세요”라며 위로한다.
울고 또 울고 안고 있는 승욱이도 덩달아 울고 완전 눈물바다에 영화 한편을 찍고 있다.
의사는 오늘이 자신이 레지던트로 이 병원에서 일하는 마지막 날이라고 했다. 몇 년째 이 병원에서 수많은 환자를 만났지만 나 같은 엄마는 처음 만난다고. “저도 처음입니다. 이렇게 눈물이 나게 슬픈 날은…”.
의사가 직접 가장 빠른 날짜의 예약을 잡아주었다. 또 2주를 기다려야 한다. 정상적으로 하면 두달을 기다려야 한다는데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지. 또 2주를 기다리자, 승욱아!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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