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6-12-3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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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을 마감하며

옛말에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 난 그 말에 반대다. 깨문 손가락 중엔 아픈 손가락도 있을 거고, 다친 손가락도 있을 거고, 데인 손가락도 있을 거고, 삔 손가락도 있을테고, 찢어진 손가락도 있을 테고, 곪은 손가락도 있을 테고, 부러진 손가락도 있을 테고.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모든 자식이 부모들에겐 다 똑같이 공평하다는 말은 내가 승욱이를 키워보니 좀 틀린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부모에게는 약한 자녀가 더 아픈 손가락이다.
올 한해 아픈 손가락을 가진 부모님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신문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또한 알게 되었다. 신문에 ‘승욱이 이야기’가 오르지 않았으면 전혀 모르고 살았을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된 것이다. 승욱이가 청각, 시각, 언어 3중장애이다 보니 청각장애, 시각장애, 언어장애, 그리고 자폐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야의 장애가정을 만나게 되었다. 그동안 만난 가정들은 내가 생각해도 다들 훌륭한 가정들이다. 너무 감사 한 것은 많은 장애부모님들이 예전과 다르게 자녀들을 많이 오픈하고 있음에 감사했고, 대단한 교육 열정과, 관심과 사랑, 그리고 많은 참여도에 대해서도 놀라게 되었다.
미국에서 태어나면서 장애를 가진 아이도 있지만 한국에서 장애를 가지고 넓은 태평양을 건너 이곳 미국까지 온 가정도 많다. 도대체 한국이 어떻게 교육을 시키고 있기에 이 미국땅까지 오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나 또한 승욱이가 돌 지나자마자 미국으로 왔지만 그때보다 6년이 지난 요즘이 더 많은 가정이 오고 있다.
도대체 왜일까? 한국에서 오신 부모님들이게 물었다. 왜 미국을 오셨습니까, 미국 또한 그리 만만찮은 곳이 아닌데 물 설고 낯 설은 곳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부모님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도저히 아이를 한국에서 교육시킬 수가 없어서 왔다고 했다. 그럼, 한국은 장애아동들을 전혀 교육시키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장애 아동 4명중에 1명만이 교육적 혜택을 보고 있고, 그나마 한 명도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교육받기가 힘들어서 부모님들이 장애자녀의 교육에 대한 포기각서를 쓰고 교육을 포기한다고 했다.
언어적으로 지리적으로 또한 직업적으로 어느 것하나 편하지 않은 미국으로 오는 장애아동이 있는 가정들을 보면서 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장애 자녀를 교육시키고 있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 아이들이 이곳에서 교육 잘 받고 잘 크고 있다고 현실에 안주해야 할까. 나는 한국사람이다. 월드컵 시즌 때만 목소리 터져라 외치는 ‘대~한민국’ 이 우리 조국이 아니라 우린 미국에서 100년을 살아도 한국사람인 것이다. 오늘도 두려움과 걱정으로 미국 행 비행기에 장애아동을 데리고 미국으로 오는 분들이 계시다.
나또 한 나의 손을 누군가 잡아줬기에 지금 여기까지 왔다. 나의 손을 잡아주신 분 중에 그 어떤 대가를 바라거나 무엇을 요구한 분들이 아무도 없었다. 그저 값없이 빛 없이 도와주신 분들이 계셨기에 승욱이와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을 안다.
요즘 자폐가 얼마나 많이 늘어나고 있는지 모른다. 솔직히 사돈의 8촌까지 계산해보면 그 중에 한 명이라도 장애가 없는 가정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장애가족은 남의 일, 나의 가정사로 치부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조금 더 다가가서 손을 잡아주시길 바란다. 조금 더 따뜻한 눈길을 주시길 바란다.
내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보다 여러 장애 단체가 생겨났고 또 많이 성장을 했다. 너무 귀한 일들을 하는 분들에게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일,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일, 열심히 일을 해도 전혀 표시가 나지 않는 일, 하면 할수록 힘든 일이 장애단체 일이다. 웬만한 사명감 없이 그 일은 하지 못한다. 난 내 아들이 장애가 있어 키우는 것도 이리 힘든데 아무 연관 없이 분들이 장애인들을 돌봐드리고 함께 한다는 것은 천사에 가까운 것이다.
밀알선교회, 샬롬선교회, 푸른초장의집, 물댄동산, 작은예수회, 한미 특수 교육센터, 희망의 날개, 그레이스 랜드, 비전시각단체… 그리고 많은 교회들이 천사의 일에 동참하고 있다.
2006년 한해동안 아픈 손가락의 사람들을 물심양면으로 돌봐주신 모든 단체와 교회 그리고 자원봉사자들과 그 외에 모든 관계자분들에게 장애아이를 둔 엄마로써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어서 이리 두서없는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들도 기억해 주세요. 이 세상에 숨은 선행의 일꾼들이 아직도 많이 있기에 그래도 이 세상은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고 살 맛 나는 세상이란 걸 말입니다.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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