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모녀가 엮는 종이마술 ‘팬터지’

2006-12-3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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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 공예가 어머니 김미정씨와 딸 지선씨

김미정(53)·지선(32) 모녀를 ‘마이다스의 손’(The Midas Touch)이라고 부른다. 이들의 손끝이 스칠 때마다 아무리 거칠고 쓸모없던 사물도 색동옷으로 갈아입어 금방 친숙하게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사람들은 세상을 만져 황금으로 바꾸어 버렸다는 ‘마이다스 왕’의 손으로 그들을 비유한다.

공예에 관한 한 이들의 솜씨는 둘째가라면 서럽다. 요즘 흔한 알공예부터 한국서 유행하는 한지공예, 종이접기, 셰도우 박스(Shadow Box), 뜨개질, 자수, 구슬공예까지 세상 손재주꾼들이 풀어내는 온갖 꾸미기가 이들의 손안에 들어 있다.
손작업으로 시작해 손작업으로 끝나는 공예의 기본은 손놀림이지만 사물을 정확히 꿰뚫고 가리는 ‘눈썰미’가 필수다. 한번 보면 자기 것을 보태 열 개를 익혀 뛰어넘는 이들의 ‘눈썰미’는 스승들도 고개를 내저었을 정도였다.
얼마 전부터 가든그로브 한인타운에 ‘자기 스타일’(9240 Garden Grove Blvd., Garden Grove)이라는 자신들만의 작은 공간을 만들어 공예를 선망하는 후학 ‘아줌마’들을 위한 공예교실을 시작했다. 그렇다고 이들 모녀의 공예 입문이 그다지 오래된 것은 아니다. 아기자기한 손재주로 집안 구석구석 손 안간 곳 없이 꾸미던 어머니 김미정씨가 5년 전 우연한 기회에 접했던 알공예가 이들 모녀를 공예의 세계로 이끌었던 계기였다. 짧은 시간에 자기만의 공간을 갖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현재 수강생들만도 30명이 넘을 정도로 이들의 솜씨는 이미 입소문이 나 있다.
타조알, 거위알, 메추리알 등등. 만물의 근원인 ‘알’(egg)를 이용해 물감으로, 보석으로 무늬를 입히고 다듬으며 색다른 예술의 세계에 빠져든 미정씨가 급기야는 공예의 모든 것에 도전한다. 알공예를 뛰어 넘어 한국으로 한지공예 유학(?)을 떠나 짧은 시간에 한국종이협회가 발행하는 강사 자격증까지 획득하고 돌아왔다.
“어려서부터 뜨개질, 자수 등 손재주가 유난히 좋아 칭찬을 많이 받았어요” 어머니 김미정씨의 말이다. “한국, 미국서 자식 키우느라 생활 전선에만 나서다 보니 공예의 세계가 뭔지도 몰랐어요. 아이들 키우고 내 것을 찾아 나섰다가 내속에 숨어있던 또 다른 나를 찾아내는 계기가 된 거지요.” 미정씨 말대로 “먹고 살기 바빠서” 자기 개발에 소홀했던 그가 중년의 나이에 숨겨져 있는 예술의 ‘끼’(?)를 찾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에 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했던 지선씨가 가세해 엄마의 말동무 겸 은근한 경쟁자가 되어 솜씨 개발에 가속도를 붙였다. 지선씨는 3남2녀중 엄마의 손재주를 이어받은 딸. 저녁이면 모녀가 오순도순 마주앉아 잰손을 놀리며 작품을 만든다. 이들이 만든 작품은 불과 5년 만에 2,000여점을 훨씬 넘어섰다.
김미정씨네는 또 다른 이야깃 거리가 있다. 자녀들도 많지만 ‘객식구’(?)도 많기 때문이다. 키우는 강아지가 9마리나 된다. 이민올 때 키우던 강아지 2마리를 데려올 정도로 ‘애견 가족’이다.


한지공예의 묘미는‘주름잡기’

시선 사로잡는 모녀의 작품들

어머니 미정씨의 작품은 역시 한지공예가 돋보인다.
반짓고리에서부터 등, 티테이블, 보석함, 신랑각시 인형 등등. “아 이것이 종이로 만든 것들인가” 싶을 정도로 나무의 결과 촉감을 그대로 간직한 작품들이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 잡는다.
“한지공예의 묘미는 역시 주름잡기가 주요 포인트죠” 얇은 종이에 풀을 묻혀 주름을 잡아 나무의 결과 같이 만드는 기법은 ‘경지’에 도달한 미정씨에게도 항상 긴장되는 순간들일 수밖에 없다.
한지공예라 해서 모두 창호지 같은 한지만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 장의 종이를 겹쳐 만든 종이 박스를 잘라 틀을 만들고 풀을 잔득 머금은 한지를 입혀 탈색시키고는 결을 만드는 주름잡기로 피니시를 해준다.
어떤 것은 지점토에 문양을 찍어 붙인 후 그곳에 한지를 입혀 단순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옛 문갑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
미정씨의 셰도우 박스는 흔히들 접해보지 못하는 일종의 착시 현상을 이용한 ‘입체’ 액자다.
같은 그림 6장을 준비해 각 그림마다 다른 부분을 칼로 도려낸다. 이렇게 만든 6장을 일정 간격을 두고 붙이면 입체감 풍부한 근사한 작품이 완성된다.
이를 액자에 걸어두면 마치 화가의 질감 풍부한 풍경화 한 폭이 탄생하는 듯 예쁘게 돋보이는 셰도우 박스가 탄생한다.
딸 지선씨는 종이 접기와 구슬작품, 뜨개질에 능하다.
신랑각시 인형부터 꽃, 달팽이, 꽃돼지, 화병 등등. 세상 사물을 형형색색 색종이로 접어 예쁘게 재탄생 시키는 솜씨가 일품이다. 옛날 색종이 접어 바지저고리 만들던 아련한 추억을 되새겨주는 해학적이고 재미있는 작품들이다.
특히 털실로 만든 뜨개질 옷들과 자수 등 공예품들은 단골손님들의 기호품이기도 하다.

<글 김정섭·사진 진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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