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6-12-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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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약해질 때

승욱이 학교를 찾는 것이 쉽지가 않다. 인터넷으로 시각장애 학교를 찾아보지만 집 근처에 갈 만한 학교는 LA쪽에 두 군데가 전부다. 두 군데 중에 한 학교는 승욱이가 가기에는 교육수준이 맞지가 않고, 나머지 한 학교를 가게 되면 기숙사를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계속해서 승욱이 학교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모든 결정은 엄마에게 달려 있다. LA쪽 학교투어도 다 마친 상태다. 지금 상황에선 두 학교 중에 한 학교를 결정해야 한다.
집에서 30분 거리 일반학교에 시각장애 학급이 있지만 승욱이처럼 시각, 청각 중복장애 아동은 없다. 시각 장애에서도 난시이거나, 약시 아동들이기 때문에 그곳에 승욱이를 보내는 것은 너무 많은 것이 옮겨져야 하는 것이다. 승욱이가 받는 특수 교육을 모두 연계해야 하는데 교육구에 있는 몇몇 특수교사가 장애 학생이 있는 교실을 이 학교 저 학교를 옮겨 다니면서 가르쳐야 하는 것이 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전문성도 떨어지고 학습의 집중도도 많이 떨어지고 무엇보다 장애 학생을 파악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문제다. 점점 마음에 부담감이 생긴다. 학교를 옮겨야 하는 날짜는 점점 다가오고 아직도 결정된 것이 없으니 괜히 마음이 분주하다.
거기다 직장을 그만 둔지 몇 달째 수입이 없으니 생계도 슬슬 걱정이다. 이사를 가려 해도 승욱이 학교가 결정이 되지 않았으니 지금 당장 이사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지난 몇 달간 나름대로 의욕이 있었는데 작은 난관에 봉착하니 또 아버지 생각이 난다. 뭐 힘든 일이 있어서 생각이 나기 보단 그냥 문득문득 생각이 난다.
바람 불어 낙엽 떨어지는 날이면 아버지가 낙엽 때문에 이런 날은 수영장 청소하시기 힘드셨겠다. 햇빛 쨍쨍한 날이면 이런 날씨에는 아버지가 일 하시기 무지 더웠겠다. 일교차가 심한 날이면 아침저녁으로 손시려웠겠다. 비가 오는 날이면 이런 날씨는 아버지가 일을 안 나가시고 집에 계셨을텐데.
생각난 김에 아버지가계신 묘지 공원으로 갔다. 파란 잔디 위에 아버지 비석이 너무 낯설다. 비석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아직 비석 주변에는 잔디와 흙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 묘지 옆에 우두커니 앉아 “아빠, 저 왔어요. 조금 힘든 일이 생겼는데요, 이럴 때 아버지가 계셨으면 뭐라고 하셨을까. 생각 중이에요. 갑자기 생각이 나는데 전에 내가 아버지를 무지 화나게 하면 항상 하시는 말씀 있잖아요. 니 내 죽거든 내 묘에 와서 울기만 해봐라 가시나, 내 그러면 관 안에서 벌떡 일어날 거라던 아버지 말대로면 지금 벌떡 일어나야 하는데 왜 못 일어나세요.”
“엄마 잘 부탁하고 가신다는 것도, 아이들 잘 키우라는 것도,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라는 것도 하나도 지금 못 지키고 있어요. 지금 제 마음에 별로 용서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고요, 책임지고 싶지 않은 것도 있고요, 미워하고 있는 것도 있어요. 요즘 마음이 아주 복잡해요. 실타래가 100개쯤 엉켜 있는 것 같아요. “
마음에서 아버지가 뭐라 하신다. ‘민아야, 강해야 한다. 네가 강해야 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맡기신 모든 것을 잘 운영하는 것이다 알았제? 내 딸은 할 수 있다. 하모, 할 수 있고 말고.’
아버지가 계셨으면 ‘걱정하지 마라. 걱정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고 나에게 큰소리 치고선 아버지는 내 걱정까지 다 떠안고 걱정을 하셨을 텐데.
아버지가 지구상에 그 어떤 오지에라도 살아 계시다면 끝까지 찾아가서 만나 보고 싶다. 사람에게 하나님이 망각이라는 선물을 주셨다는데 왜이리 잊혀지지 않는 것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새록새록 생각나는 것이 아버지다. 잘해 드린 기억은 하나도 없고, 못해 드린 기억만 잔뜩 나니 이건 도대체 어떻게 치유를 해야 하는 것인지 나도 모르겠다.
아버지 무덤 옆에 얼마만큼을 앉아 있었는지 앉아 있던 엉덩이가 축축하다.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향하며 많은 것을 정리하게 되었다. 마음에 참을 수 없는 것들, 용서가 되지 않는 것들, 내 스스로 해결 할수 없는 수많은 문제들을 하나 둘씩 마음에서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아버지, 천국에서 절 응원해 주세요. 힘내라고, 모든 것이 다 잘 될 거라고 응원해 주세요. 앞으로 헤쳐나갈 모든 것들을 위해 응원해 주세요. 우리 딸 화이팅 이라고’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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