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 승욱이 이야기

2006-12-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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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욱아, 니가 중매했니?


승욱이의 학교투어가 시작이 되었다. 집에서 가까운 곳부터 LA까지 두루두루 다니는 중이다. 안타깝게도 가는 곳마다 실망감만 우리에게 돌아온다. 막상 5년간 다니던 학교를 떠나려하니 지금 다니는 학교가 얼마나 좋은 학교였는지 새삼 느끼고 있다. 배부른 소리일지 모르지만 이것이 소위 말하는 사립학교와 공립학교의 차이인가? 학교 시설부터 모든 서비스까지 가슴이 갑갑해지기 시작했다. 함께 학교투어를 하고 있는 승욱이 학교 선생님들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다. 1년 전부터 학교를 옮기는 것에 대해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이것이 현실로 다가오니 과연 9월 학기에 승욱이가 학교를 들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트리샤 선생님과 승욱이 담임선생님인 헤내카가 언제나 함께 동행해 준다. 나보다 더 날카로운 질문을 투어로 간 학교 선생님에게 묻는 걸 보면 역시 선생님들이 나보다 승욱이를 더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세번째 학교를 방문하고 나의 약간 실망하는 얼굴을 보고는 트리샤 선생님이 곧 더 좋은 학교를 찾을 것이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내 어깨를 토닥여준다. 근데 ‘어? 못 보던 반지를 끼고 있네?’
난 “트리샤, 못 보던 반지네? 와, 예쁘다”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헤내카 선생님이 ”민아, 몰랐니? 트리샤가 앤디하고 약혼했잖아.” 난 “정말? 정말이야? 언제? 굿뉴스, 특종인 걸”
여기서 잠깐 우리 앤디 선생님을 소개하고 싶다. 승욱이 학교에서 승욱이의 모든 야외활동을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앤디. 어찌나 웃기게 생겼는지 승욱이가 시각장애자용 지팡이를 사용하는 법부터 자전거 타기, 보행하기, 위험에 처했을 때 자기 대처법까지 승욱이와 호흡을 맞춰 아주아주 재미나게 승욱이를 가르쳐 주는 사람이다.
처음 앤디를 만났을 땐 승욱이는 울기만 했다. 우리의 앤디 선생님이 승욱이의 심기를 전혀 안 건드리고 승욱이가 자기에게 다가올 때까지 무려 두 달간을 짝사랑만 하다 드디어 두 달만에 친해졌다고 난리 난리가 났다. ‘그리 좋을까? 자기가 아빠도 아니면서. 쩝.’ 하여간 승욱이가 그와 친하게 된 것은 분명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앤디 선생님은 언제나(겨울에도)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 그리고 랜드로버 같은 신발을 신고 야구모자에 선글라스를 항상 끼고 있다. 아마도 야외에서 활동을 하기 때문에 복장이 그런가 보다. 그리고 항상 똑같은 스포츠 시계를 차고 있다. 언제나 승욱이를 만나면 자기 스포츠 시계를 승욱이 손에 대고 자기를 소개한다(모든 선생님들이 각자가 자기를 소개하는 물건이나 신체의 특정부위가 있다. 그래야 승욱이가 어떤 사람인지를 분별할 수 있기에). 앤디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자기 시계를 만지게 하는데 뭔가 특별한 것도 없는데 왜 승욱이가 앤디 선생님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그건 털 때문이다. 털, 우리에겐 특히 한국 사람에겐 없는 털이 그 비결이다. 앤디 선생님 얼굴은 사람인데 몸은 곰이다. 사람의 탈을 쓴 곰. 어찌나 몸에 털이 많은… 승욱이가 처음에는 앤디 선생님의 스포츠 시계를 만지다가 스물스물 그의 팔뚝에 난 그 문제의 털을 만지게 되었나보다.
바로 승욱이의 보행훈련을 해주시는 털보 앤디 선생님과 트리샤 선생님이 약혼을 했다니. 게다가 두 사람은 모두 ‘돌아온 싱글’이다. 트리샤 선생님의 말이 승욱이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함께 있다 보니 자연히 앤디 선생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었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승욱이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서로 호감을 갖게 되었고 급기야 결혼을 약속하는 사이로 발전했다고 했다. 승욱이가 두 사람의 다리 역할을 많이 해주었다고 결혼식 때 화동으로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물론이지요, 초대해 주시면야 가고말고요. 승욱이 학교를 찾는 일에 잠시 정신을 내려놓고 다들 주차장에 둘러서서 로맨스 스토리를 경청하고 말입니다.
승욱이가 너무 좋은 일을 했네. 일곱 살짜리가 중매를 다 하다니… 아니 그러고 보니 승욱이가 두살 때 그들이 만났다고 하니 벌써 5년째네. 그럼, 두 살짜리가 중매를 했다고? 호호. 기네스북에 오를 일이네. 하여간 너무 기쁜 소식에 난 집에 돌아와 승욱이를 붙잡고 “욱아, 트리샤 선생님이 털보 앤디 선생님하고 결혼한데. 그게 다 너 때문이래. 기쁘지?” 승욱이는 도대체 무슨 일로 엄마가 이리 흥분했는지 알 리가 없지만 내가 웃으니 자기도 허허허 따라 웃는다.
승욱이가 첫 번째로 중매한 두 분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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