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러기 엄마 ‘아름다운 동행’

2006-12-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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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가장 사랑하는 이의 내일과 자신의 오늘을 맞바꾼 당신…


어바인 거주 150여명
애환 나누는 첫 모임


그들이 모였다.
결코 간단치만은 않은 신조어 ‘기러기 엄마’라 불리는 이들. 그들이 지난 6일 어버인 온누리교회(담임목사 반태효)에서 한자리에 모여 앉았다. 특별한 이슈나 특별한 결의, 그렇다고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할 뚜렷한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함께 얼굴 맞대고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첫 모임은 의미가 있다는 것이 주최측이나 참석자들의 이야기다. 특히 온 가족이 모이는 연말이지만 많은 기러기 가족들은 아빠 없이, 친척 없이 연말을 나기가 일쑤여서 이들에겐 더 외로운 계절이기도 하다. 모임의 캐치프레이즈처럼 ‘세상 가장 사랑하는 이의 내일과 자신의 오늘을 맞바꾼 당신’들을 위한 특별한 모임에 동행해 봤다.



남가주에 800여명… 개그우먼 이성미씨도 참가

■행사 어떻게 마련됐나
10년 전부터 시작된 조기유학 바람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이제는 기러기 엄마니 펭귄 아빠니 하는 신조어까지 생겨난 마당에 이들에 대한 시선은 복잡다단하다. 그러나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무색한 한국 엄마들에게 자녀들을 위한 교육열은 가족과 생이별을 감수하고 기러기를 자청한다. 특히 최근 어바인을 중심으로 한 오렌지카운티에 기러기 엄마들은 증가추세에 있다. 행사 주최 측에 따르면 어바인 일대에 거주하는 기러기 엄마들의 수는 줄잡아 800여명.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그래서 기러기 엄마들이 몰려 있는 오렌지카운티에선 교회별로 이들을 위한 작은 모임들도 운영되지만 한 번도 이들이 모여 이들이 겪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오픈해 논의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뜻 맞는 이들이 모여 ‘한번 모여보자. 그래서 도대체 이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무엇인지, 겪고 있는 어려움은 무엇인지를 알아보자’하고 반년 전부터 모임을 준비한 것이 바로 이 ‘동행’이다.
기러기 엄마라는 말만으로도 따가운 한인들의 시선에서부터 이곳 한인들과 마찬가지로 1세 부모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어려움, 아버지가 없는 빈자리에 대한 불안함, 낯설고 물 설은 곳에서 정착해야 하는 의무감까지 이들을 옥죄는 것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 자식 잘 키워 보겠다는 것이 이들의 유일한 목표다. 물론 이는 보장된 길은 아니다.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그래도 이들은 이 불안함 속에서도 오늘도 내일도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갈뿐이다.

그런 이들이 알음알음 특별한 홍보도 없는 ‘동행’이라 이름 붙은 자리에 와 앉았다. 이날 행사에는 기러기 엄마들과 행사 관계자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기러기 엄마들의 연령층은 다양했다. 주 연령층은 40대가 압도적이었지만 저학년 자녀를 둔 30대에서부터 대학 혹은 대학원생을 둔 50대까지 골고루 참여했다.
이날 가장 눈길을 끈 순서는 3남매와 함께 캐나다에서 기러기 엄마 노릇을 하고 있는 개그우먼 이성미씨와 참석자들의 대담 순서. 어느새 기러기 엄마 노릇을 한지 4년이 넘었다는 이씨는 처음엔 낯설고 물 설은 땅에서 언어도 통하지 않아 마음고생도 심했지만 지금은 이씨도 아이들도 빠르게 적응해 큰 문제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왜 시련이, 고통이 없었을까.
그는 “특히 남편과 떨어져 애들을 혼자서 키우는데서 오는 마음고생이 컸다”며 “그러나 남편에게 무언가를 바라기보다는 내가 변하면서 부부 관계도 가족 관계도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날 행사에서 특유의 입담으로 참석자들을 웃기고, 울렸다. 참석자들은 이씨의 기러기 엄마생활에서 공감 가는 부분에선 박장대소하며 ‘맞어, 맞어’를 연발하고, 언어 때문에, 남편에 대해 그리움 때문에 힘든 이야기에선 눈물을 훔치기도 하면서 이씨의 이야기에 몰입했다.

<기러기 엄마들에게 물어봤습니다>
▲기러기 엄마로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엄마들이 이구동성 0순위로 꼽는 것은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해 줄 수 없는 점이다. 참석자들은 “어릴 때는 어린 대로, 사춘기 때는 사춘기인 대로 아버지의 자리가 중요한데 이를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가 채워줄 수는 없다”며 “심지어 아버지의 빈자리가 아이들이 성장해서는 상처가 되기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전했다.
▲자녀 교육적인 측면에서 유학생활에 만족하는지.
여기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했다. 경쟁이 지나치다 못해 가히 살인적이기까지 한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 비해 자유롭고 합리적인 교육제도엔 만족도를 표시했지만 언어장벽으로 인해 자녀의 안정적인 학교생활 정착을 도와주는 데서 오는 한계로 힘들어했다. 또 사교육 역시 주류사회든 한인사회든 만만치 않은 점도 이들이 꼽는 힘든 점 중 하나.
▲어떨 때 가장 보람을 느끼는지
자녀 때문에 온 만큼 당연히 보람은 아이들에게서 온다. 엄마보다 빨리 적응하고, 도와주지 못해도 알아서 학교생활도 잘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아이들을 볼 때 엄마들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아이들과 가장 큰 문제는
비단 기러기 엄마가 아니더라도 1세 부모들이 겪는 가장 큰 고민인 언어 문제는 기러기 엄마들에게도 큰 문제. 갈수록 한국말을 잊어버리면서 자녀와 대화가 뜸해지는 것을 당연히 1순위로 꼽았다.
▲한국에서 실제 조기 유학 현실은 어떤지
서울 강남에서 온 엄마들일 수록 조기유학은 이미 한국에선 피할 수 없는 대세라고 설명한다. 방학이 가까워 오면 한 반에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어학연수다 조기유학을 떠나는 추세라는 것이 이들의 전언.
한 참석자는 “상황이 이렇다보니 그렇지 않아도 경쟁의식과 비교가 만연한 한국사회에서 어학연수 한 번 안 보내곤 버틸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그러다보니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돈 있는 이들이 기러기 엄마를 한다곤 하지만 요즘은 경제적 상황과 상관없이 무작정 날아오는 이들도 많은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기도 했다.
▲만약 가까운 지인이 기러기 엄마를 하겠다고 하면.
많은 참석자들이 이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결국 이 질문에 대한 택일은 ‘쌍수 들고 환영하겠는가’와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말리겠느냐’로 요약할 수 있는데 대부분 적극 말리고 싶다고. 특히 기러기 엄마 연차가 오래된 이들일수록 말리고 싶다는 의견을 내놨다.

<목회 상담가 김미선씨 인터뷰>
갈수록 늘어나는 기러기 엄마들을 위한 제대로 된 상담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생각하는 김미선(사진)씨는 이번 행사를 통해 가족들의 적응을 돕는데 큰 목표를 세웠다. 이외에도 기러기 엄마들이 부모 없이 혼자 유학을 온 학생들을 위해 ‘한 가정 한 자녀 입양’을 실시하여 이들에게 정신적으로 부모가 돼주는 프로그램도 계획 중에 있다.
김씨는 ??지금껏 다양한 처지에 있는 기러기 엄마와 가족들을 상담했었다??며 ??1세 부모가 자녀 양육하기가 쉽지 않지만 기러기 가족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위해서라도 이들을 위한 도움이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는 앞으로 기러기 엄마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 다양한 주제로 세미나와 행사도 준비중이다. 틀에 박힌 형식적인 행사가 아닌 세미나의 경우도 기러기 엄마들이 목말라 하는 대학 진학관련 정보나 자녀들의 연령별 멘토링과 같은 정보는 물론 미국 문화, 학교에 대한 기본 정보, 심지어 미국 학교에 알 맞는 도시락 싸기 등과 같은 기러기 엄마들이 궁금하지만 어디서도 얻기 힘든 세세한 정보들도 제공할 계획이다.
<글 이주현 기자·사진 진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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