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6-12-0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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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세요, 트리샤 선생님

승욱이가 몇달 후면 7세가 된다. 생일이 돌아오는 달에는 IEP미팅을 하게 된다. IEP미팅이란 모든 장애 아동들이 일년에 한번 (때에 따라 한번 이상) 각 개인 장애에 따라 교육 목표를 정하고 선생님들과 교육구 관계자와 부모가 갖는 일년 중 가장 큰 미팅이다. 승욱이 학교는 일년에 4번 정도 선생님들과 부모가 작은 IEP미팅을 한다. 일년에 4번 미팅을 통해 승욱이의 교육적인 것에 관한 것들을 선생님들과 함께 토론하고 좋은 방향을 잡아나가는 일을 한다.
학교 자체에서 하는 이번 IEP미팅이 끝나면 마지막 교육구와 함께 하는 IEP를 거쳐 승욱이는 5년간 다니던 학교를 옮기게 된다. 승욱이가 다니는 학교는 터스틴에 위치한 BCLC라는 시각장애학교인데 0세에서부터 5세까지 다니는 학교다. 그런데 승욱이는 특별하게 7세까지 다니게 되었다. 승욱이의 와우이식 때문에 학교를 옮긴다는 것은 승욱이에게 힘들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학교에서 승욱이를 위해 교실을 새로 만들어서까지 계속 다니게 해 주었다.
이번 미팅의 가장 큰 이슈는 승욱이의 초등학교를 결정하는 것이다. 승욱이가 중복장애 아동이기에 시각 청각을 다 만족시켜 줄 수 있는 학교를 지금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 찾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시각장애학교와 청각장애학교가 완전 분리되어 있는 교육 현실과 5년간 교육시킨 것에 대해 다음 학교가 지금까지의 교육을 잘 연결시켜 줄 수 있는 학교를 아직 선생님들이 결정을 못하고 있어서이다.
한마디로 ‘공든 탑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승욱이 학교 선생님들의 의견으로 아직까지 학교를 정하지 못해 우왕좌왕이다. 미팅이 시작되었다. 여러 초등학교가 물망에 올랐다. 그 중에서 집 가까운 곳부터 학교투어에 들어가기로 했다. 물론 승욱이 학교 선생님들도 함께 가는 것이다. 지금 승욱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스피치를 가르치는 것에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스피치 분야를 잘 가르쳐 줄 수 있는 학교부터 먼저 가 보기로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가는데 저쪽 구석에 다소 우울하게 앉아 있는 선생님이 계시니 그 이름은 트리샤다. 별로 말도 하지 않고 내 눈도 마주치지 않고 있다.
미팅이 끝나고 방에 교장선생님과 트리샤가 남았다. 교장선생님이 말하길 이렇게 이 학교를 오래 다닌 아이도 없었고, 또 중복장애 아동이면서 와우이식을 처음으로 했고, 학교에서도 교육구에서도 모든 것을 쏟아 부어 교육시켜 준 아이도 처음이라고 말을 했다. 승욱이의 지금까지 모든 기록과 교육과정을 통해 다음 세대에 태어나는 중복장애 아동들은 모두 축복을 받았다고 승욱이 교장선생님이 말해주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인 교장선생님과 교육목표가 뚜렷한 선생님들과 대단한 서포터인 교육구가 함께 승욱이를 이만큼 키워냈다.
트리샤를 보니 울고 있다. 난 “트리샤 고마워요. 지난 5년간 우리 승욱이 잘 키워줘서 내가 정말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난 승욱이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를 키운 것, 그러니까 그저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운전수 역할밖에 한 것이 없어요. 트리샤 당신은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승욱이를 붙잡고 모든 것을 수화로 또 말로 그리고 행동으로 함께 해 주어서 지금 너무 잘 성장한 것 같아요. 당신의 아름다운 헌신이 자랑스럽습니다.”
트리샤 선생님은 “5년전, 이 학교를 떠나려고 할 때 나의 발을 붙잡은 아이가 있었어요. 나의 교실 뒤에 앉아 조용히 앉아 울고 있는 한 엄마를 보았어요. 차마 그 아이와 엄마를 모른 척 할 수 없었어요. 더 좋은 조건의 학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냥 그 아이를 맡아서 가르쳐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후로 5년이란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어요. 너무도 느리지만 조금씩 조금씩 세상 밖으로 걸어나오는 그 아이 때문에 매일매일 신이 났어요. 그 아이를 이제 더 큰 세상으로 보내야 하는데 아직 전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승욱이가 학교를 떠나면 당장 나의 모든 일을 잃는 것 같을 거예요. 지금 내 머릿속에는 아무 계획도 생각도 없어요.”
영어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나와 제일 대화를 많이 나눈 사람이 ‘트리샤’선생님이다. 지금은 농담도 하고 장난도 많이 치지만 처음에는 나의 영어 장애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살았다. 하지만 이 세상에 말하지 않아도 다 통하는 것이 있다. 주절주절 이러쿵 저러쿵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이 있다. 그건 ‘순수한 사랑’이다. 나의 진심을 언제나 알아주었고, 나의 솔직함을 언제나 받아주었던 ‘트리샤’는 진정으로 우리 가정을 사랑했다. 진심으로 승욱이가 잘 크길 바랐고, 그녀의 열정과 오랜 기다림으로 승욱이가 이만큼 자란 것을 안다.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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