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6-12-0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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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삐, 집에서 퇴출되다

강아지 한 마리가 집에 있는 것이 왜이리 손이 많이 가는지 모르겠다. 주일날 교회에 아이들과 밖에 나와 있으면 예삐 밥이며 대소변 등이 걱정이 된다. 내 자식도 잘 간수 못하는 내가 개까지 이것저것 챙기려니 은근히 부아가 나는 참이다. 이놈은 분명 `변종’인 게 확실하다. 집에서 키운지 5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어찌나 쑥쑥 자라는지 종류는 치와와라고 하는데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치와와이다.
치와와의 특징은 짧은 털이 생명인데 짧은 털은 고사하고 털의 길이가 1센티미터부터 5센티미터까지 들쭉날쭉해서 가만히 쳐다만 봐도 정신이 없다. 거기다 날씬하고 가는 몸매의 오리지널 치와와에 비해 이놈은 어찌나 먹을 것을 밝히는지 먹는 대로 놓아두면 아마 세상 넓은 줄 모르는 아주 이기적인 몸매가 될 것 같다. 거기까지는 다 용서가 되는데 계속해서 승욱이 먹는 음식에 입을 대니 언제나 지키고 있을 수도 없고, 묶어 두면 큰아이가 어느 샌가 가서 풀어주니 매일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다. 낮에는 그나마 묶어두면 얌전을 빼고 앉아 있어도 큰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당연히 풀어주는 것으로 알고 낑낑거리니 그 소리가 동네가 떠나갈 지경이다.
예삐의 특기는 승욱이 음식 빼앗아 먹기, 집에서 신는 실내화 물어뜯기, 대소변용 신문지 갈기갈기 찢어 놓기, 물그릇 엎질러서 마루바닥에 발자국 내기, 빨래 여기저기 감춰두기, 카펫 끝자락 실 뽑기, 가죽소파 발톱으로 긁어 놓기, 내가 구박하면 식탁 밑 내가 앉는 의자 밑에 용변보기 등등. 아주 엽기적인 행동은 다 할 줄 아니 완전 미운 털이 확실히 박힌 상태이다.
그러다 결국 참고 참다가 난 큰 아이에게 경고장을 날렸다. “야, 이승혁. 너 예삐 이렇게 질서없이 키울 거면 엄만 내일이고 당장 남의 집에 줄 꺼야. 엄마하고 강아지하고 다 같이 살려면 묶어 놔. 알았어?” 큰아이는 매일 같이 나와 약속을 하지만 여우같은 예삐의 슬픈 눈 때문에 항상 개를 풀어놓으니 아들과 나의 관계는 악화될 대로 악화 된 상태다.
엄마가 생각보다 미국에 빨리 돌아오셨다. 엄마는 짧게 한국을 다녀오셨다고 하지만 나에게 아주 긴 엄마의 한국방문이었다. 엄마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잔소리가 시작이 되었다. “야, 김 민아. 너 정신이 있는 애야, 없는 애야. 집구석이 도대체 이게 뭐야. 어휴 못살아” 그리고 나서 딱 예삐하고 엄마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어라, 쟤가 예삐야? 어머 완전 개가 돼버렸네.”
바닥에 개털이 여기저기 날아다니니 엄만 승욱이가 매일 바닥에 앉아서 노는데 승욱이 입에 개털이라도 들어가면 어쩌냐고 도저히 집안에서 키우는 개는 데리고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엄마는 사실 엉망이 되어버린 집 때문에도 화가 난 상태였다). 아, 엄마가 오신다는 연락을 받고 청소를 했건만. 이게 웬 날벼락인가.
내친김에 큰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에 언니 편에 개를 데리고 온 곳에 다시 돌려보내라고 하셨다. 주섬주섬 예삐의 물건을 싸는데 미안하기도 하고 불쌍한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내가 생각해도 아직까지 집에서 키우는 개는 승욱이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나저나 큰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분명 예삐를 찾을 것이 분명한데 이걸 어찌 설명을 하누. 언니편에 예삐를 보내고 돌아서서 승욱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예삐가 있는지 없는지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승욱이는 그저 할머니를 만난 기쁨에 싱글벙글이다. 그런데 문제는 큰아이가 집에 돌아온 후다. 할머니하고 인사를 하자마자 예삐를 찾기 시작한다. 잘 설명을 하고 설득을 했지만 울고불고 소리를 지르고 당장 강아지를 찾아오라고 막무가내로 우는 통에 내가 어떻게 할 줄을 모르고있다. 몇 시간째 시위를 하고 있는 큰아이. 꺼이꺼이 거리며 나에게 “엄마, 엄마 진짜 나쁜 사람인 것 같아. 엄마 크리스천이잖아. 크리스천이라면서 엄마는 친구를 갖다버려? 예삐는 내 친구란 말이야. 엄마는 친구가 귀찮다고 더럽다고 갖다버려? 꺼이꺼이.”
난 “네가 왜 친구가 없어, 승욱이랑 놀면 되잖아” “승욱이는 말도 못하고, 나하고 공놀이도 못하고, 같이 뛰어나가 놀지도 못하잖아. 조이스 누나는 조셉하고 놀고 친구들도 다 동생하고 형하고 논단 말이야. 난 예삐가 내 친구였는데 왜 엄마가 내 허락도 없이 갖다 줬어. 응?”
여덟 살짜리, 여섯 살짜리 정상적인 형제 같으면 함께 게임도 하고, 블럭도 만들고, 밖에서 자전거도 타고 놀텐데, 그런 것을 승욱이가 전혀 못하니 큰아이가 외롭긴 무지 외로웠나보다. 한번도 다른 아이들과 동생을 비교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자신의 마음속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니 속이 상하긴 많이 상했나보다. 할아버지가 계실 때는 여기저기 따라다니고 했는데 지금은 할아버지도 안 계시고 동생은 엄마하고 할머니가 번갈아 가면서 봐주고 있으니 자신만 외톨이 같았나보다.
다음 날도 다음 날도 큰아이의 화는 풀리지가 않는다. 살살 달래서 한달 후에 예삐가 있는 곳에 찾아가자고 했다. 다음에 마당 있는 집에 이사가면 밖에서 키우는 큰 개를 사주겠다고 약속 또 약속을 하고서야 큰아이가 겨우 마음이 풀렸다.
지금도 잊을 만하면 엄마. 예삐는 얼마나 컸을까? 새끼 낳으면 우리 한 마리 달라고 하자. 근데 엄마 우리 언제 예삐 보러 가?
괜히 상처만 남겨준 예삐 때문에 또 큰 아이에게 미안해졌다. 만약 예삐가 승욱이에게 좋은 친구였다면 내가 지금처럼 퇴출을 시켰을까? 지금 예삐는 개를 사랑하는 집에서 잘 크고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개가 무지 비싸고 귀한 개였다고 언니에게 전해들었다. 5개월 동안 나에게 구박만 받고 떠난 우리 큰아이가 사랑하던 강아지 예삐. 부디 다른 집에서는 많이 사랑 받고 잘 크길.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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