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후’ (Climate)★★★★(5개 만점)

2006-11-1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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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따라 그린 권태부부 ‘이별 방정식’

2003년 칸영화제 수상작으로 미국에서는 대도시에서 잠깐 상영된 터키 영화 ‘디스턴트’(Distant)를 쓰고 감독한 누리 빌지 실란의 영화로 정경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그의 영화는 진행 속도가 소걸음인데 이런 서술방식은 감정의 응고와 관계의 붕괴 그리고 삶의 권태를 다루는 그의 영화에 아주 잘 어울린다.
그의 영화는 2편밖에 안 봤지만 톤이 비감한데 특히 극단적인 클로스업과 롱테이크와 롱삿으로 사람의 얼굴과 하늘에 뜬구름과 황량한 경치를 찍은 촬영은 현혹적이다. 때로 결핍된 얘기가 이 촬영에 의해 충족된다.
이 영화는 실란이 주연도 하는데 그의 상대방 역을 맡은 에부르는 실란의 실제 부인이다. 영화는 3부작 식으로 구성됐는데 계절에 따라 진행된다.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
첫 장면은 대학 교수인 이사와 그의 아내로 TV 미술감독인 바하르가 찾아온 휴양지인 카스에서 시작된다. 바하르가 먼데서 카메라로 유적지를 찍는 남편을 피곤한 눈동자로 응시하는데 바하르의 시선에서 둘간의 혼의 부식을 감지하게 된다. 이튿날 해변(클로스업 촬영이 멋있다)에서 이사는 바하르에게 둘이 헤어질 것을 얘기하고 바하르 혼자 이스탄불로 돌아간다.
가을이 오고 이사는 전 애인으로 육감적인 세라프(나잔 케살)를 찾아간다. 그리고 둘이 레슬링 하듯 하는(거의 겁탈 같다) 섹스장면이 단 한 컷에 의해 오래 묘사된다. 세라프는 이사를 무조건 받아들이는 여자. 그러나 이사가 세라프 때문에 아내와 헤어지기로 결정한 것은 아니다 부부가 살다가 찾아오는 관계의 곰팡이 생성 탓이다.
눈 내리는 겨울. 세라프가 일러준 대로 이사는 먼 동쪽에서 TV 드라마를 찍고 있는 바하르를 찾아가 재결합을 요청한다. 함박눈이 내리는데 재결합을 호소한 이사가 탄 비행기가 하늘 높이 날아가고 아래에서는 바하르가 졸린 듯한 시선으로 땅을 내려다본다. 별 대사가 없이 응시와 긴 침묵 등으로 얘기되는데 이런 표현 수단이 감정의 결빙을 말하는 영화에 잘 어울린다. 성인용. 뮤직홀(310-274-6869), 원콜로라도(626-744-1224),
타운센터5(818-981-9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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