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숙희 기자의 주방일기

2006-11-0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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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일기

언제 이런 날이 올까 손꼽아 기다렸는데 드디어 마지막 주방일기를 쓰게 되었다.
지난 주 있었던 편집국내 부서 이동에 따라 나도 자리를 옮겼다. 푸드 섹션과 스타일, 종교면을 담당했던 특집 2부를 떠나 교육, 건강, 문화, 위켄드 섹션을 만드는 특집 1부로 옮긴 것이다. 신문사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승진을 했다느니 축하한다느니 하는데, 그런게 전혀 아니고 그저 맡은 일의 분야가 달라진 것뿐이다.
마지막 일기를 쓰는 오늘은 마침 푸드 섹션 창간 4주년이 되는 날이다. 2002년 11월6일에 첫 푸드 섹션이 나왔으니, 정확히 4년동안 참으로 많고 많은 요리와 와인 기사들을 발굴해 열심히 소개했다. 함께 일했던 기자들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정성껏 만들어준 덕분에 한국일보 푸드 섹션이 독자들의 사랑이 넘치는 인기 섹션으로 자리 잡은 것을 감사드린다.
그동안 쓴 주방일기를 세어보니 이것까지 합쳐서 총 196개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나 많이 썼는지 나 자신도 믿어지지 않는데, 돌이켜보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처음에 멋모르고 시작한 칼럼이 먹거리 소재를 넘어서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다루다보니 반향이 일파만파, 어딜 가나 나의 신상을 훤히 꿰고 있는 독자들에게서 놀림도 많이 당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도 “매주 글을 읽다보니 늘 만나는 사람처럼 친하게 느껴진다”며 반갑게 알은 체를 해왔고, “생각이 어쩜 그렇게 나와 똑같냐”고 하는 동지들도 많이 만났으니, 우리들의 살아가는 모습은 모두 그렇게 비슷한가보다.
한주에 하나씩 써대다보니 소재가 고갈되는 것은 당연한 일, 매주 월요일 오후부터는 우거지상을 하고 앉아 후배들에게 신경질을 부리곤 하였다. 나중에는 짜내고 또 짜낸 탈지대두처럼 되었으며 화요일 오전 11시가 마감인데 10시59분에 탈고하는 일이 항상이었다.
그런데 소재 고갈이나 마감 전쟁보다 더 힘든 것은 독자의 스펙트럼이 너무나도 넓다는 사실이었다. 주방일기의 독자들 중에는 남자들이 엄청 많았다. 여자들이나 읽으리라는 나의 예상과는 완전히 달라서 연세 지긋한 노인독자들도 굉장히 많았으며, 타주에서 전화해오는 독자들의 수는 놀라울 정도였다. 그러니 이렇게 다양한 연령, 성별, 취향, 의견을 가진 미전국의 독자들을 다 만족시키는 글을 쓴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구나 일간신문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개인의 삶을 솔직하게 노출해온 탓에 그 반향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났다.
같은 글을 놓고도 어떤 사람은 귀엽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잘난 체한다고 하였다. 존경스럽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속물적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음식과 주방에 관계된 이야기만 써달라는 주부가 있는가 하면, 호불호가 분명한 나의 의견이 가장 읽을 만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가족이야기가 재미있다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지만, 한편 아들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거슬린다는 지적을 받은 일도 있다. 휴~~
그 외,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과 관심과 격려를 받았다. 주방일기를 모은 책도 한권 나왔으니 대체로 나는 행복하다고 해야할 것이다. 그 책의 머리글에 썼던 부분을 빌어다가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다.
… 내 글의 생생한 소재가 되어준 남편과 아들, 그리고 동료, 친구, 이웃들에게 감사한다. 4년에 걸쳐 쓴 것들이라 글 안에서 나의 아들은 열한 살에서 열다섯 살이 되었다. 아마도 남자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가장 많이 성장하는 기간이었을 것이다. 그 동안 나도 4년어치 만큼 늙었고, 4년어치 만큼 성숙한 것 같다. 독자들도 나와 함께 그만큼 더 성숙해졌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새로 맡은 김정섭 부장이 더 나은 푸드 섹션, 남성의 미각이 반영된 새로운 스타일의 맛있는 지면을 만들어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지막에는 할 말이 많을 것 같았는데 왠지 어색하고 서먹서먹하다.
이래서 떠날 때는 말없이, 라고 했나.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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