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혼혈을 긍지로 삼는 투니시아인

2006-11-0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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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외세 침입으로 복잡한 혈통 형성, 사막의 베르베르인이 주류이뤄
목욕 즐기는 해적의 후손들

“이 마스크(가면) 얼마요?”
“60유로요”
“좀 비싸네”
“40유로에 가져가세요”
그래도 사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를 하니까 이 투니시아 상인은 “30유로!”라고 소리 지른다. 반으로 깍아주는 상품은 질을 의심해야 한다. 안사겠다고 손을 가로 저으니까 “20유로… 10유로”까지 가격이 내려온다. 내가 돌아서서 가게를 나가려하자 이 친구는 나에게 다가와 “얼마면 사겠느냐”고 묻는다. 사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5유로”라고 대답했더니 나를 노려보며 가져가라고 한다. 사기는 샀는데 너무 기가 막혀 상대방에게 “댕큐”라는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60유로 짜리가 5유로까지 내려오다니… 이건 좀 너무 심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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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베르족 여인들을 그린 가면. 60유로 짜리가 깍으면 5유로 까지 내려간다>

이같은 거래흥정은 투니시아인 기질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유럽의 바로 이웃인데도 정가를 고집하는 서구인들과는 전혀 다른 상업문화를 지니고 있다. 오늘만 넘기고 보자는 식의 사고방식이 이들을 지배하고 있음을 엿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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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꽃을 팔고있는 노인. 투니시아인은 빨간모자를 쓰는 것이 특징이다>


투니시아인의 성격을 이해하려면 투니시아가 중세기 지중해 해적활동의 중심무대 였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헐리웃 영화에 등장하는 해적들의 근거지가 바로 오늘의 투니시아다. 지금도 인질을 가두어 놓았던 감옥이 그대로 남아있다.
원래 투니시안은 기원전 지중해 무역을 장악하던 페니키아의 후예들이었으나 한니발 전쟁에서 거의 몰살당해 종족이 없어지다시피 되었다. 카르타고 멸망후에는 로마인들이 다스렸고 다시 유럽의 반달족이 쳐들어와 수백년 통치하다가 비잔틴에 넘어갔다. 이어 스페인의 안달루시아인이 밀려왔으며 해적왕 바바로싸 형제가 이 지역을 장악해 악명을 날렸다. 그후 터키가 다스리다가 아랍 베르베르족에게 넘어갔으며 이어 프랑스 식민지가 되었다가 2차 대전후 독립했다.
따라서 투니시아인들은 인종적으로 복잡하게 피가 섞여있다(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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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시실리, 베르베르, 터키, 아프리카, 스페인계 안달루사아인, 유대인, 프랑스 혼혈계등 국민들이 서로 핏줄이 다른 선조들을 갖고 있다. 이들은 혼혈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따라서 성격도 특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언어는 아랍어이며 종교는 이슬람이다. 오래동안 프랑스의 식민지로 있었기 때문에 제2외국어가 프랑스어고 학벌이 있는 사람들은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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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 입구에 있는 찻집. 건물 대부분이 흰색과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다>

로마가 카르타고를 다스리면서 남긴 하나의 뚜렷한 문화유산이 있다. 다름아닌 로마인들의 목욕문화다. 투니시아인들은 성격은 좀 얼러뚱땅이지만 몸을 깨끗이 하는 목욕은 매우 중시하며 시내에 대중 목욕탕이 많다. 직장이나 친구들의 생일파티를 큰 대중탕을 빌려 하는 경우도 있다. 거기서 하루종일 먹고 마시고 목욕도 하는 식으로 파티를 벌인다. 호텔방의 목욕탕 구조도 어느나라 넓고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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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니스 교외 시디부 사이드에 있는 민속촌의 선물가게. 민속촌에는 투니시아 여성들의 전통적인 혼례의식과 의상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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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인 투니스 시내 번화가. 높은 빌딩이 없고 가게들로 줄지어져 있다>

<이 철> 이 사
c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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