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등 돌리면 남남이라고 부부 관계를 자조적으로 말하지만 남녀가 서로 만나 검은머리 파 뿌리 되도록 살아내는 인연이란 얼마나 기막힌 인연인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얼마전 오랜만에 수필가 피천득 님의 글을 읽고 그의 소년 같은 맑은 감수성에 코끝이 찡해졌던 기억이 있어 수필의 전문을 소개한다.
10년 근속 기념품으로 금반지를 받았다. 좀 작으나 모양이 예쁘다.
나는 예전에 반지를 두 개 산 일이 있다. 하나는 백금에 진주를 물린 아름다운 반지로 약혼선물로 산 것이요, 또 하나는 결혼식에 산 금반지다.
그런데 백금반지는 일제 말년 백금 헌납 강조 주간 때 내어놓지 않으면 큰 벌을 받을까 진고개 어떤 상점에 팔았다. 결혼반지가 중하지 약혼반지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중얼거리며…
결혼반지를 갖고 귀금속 상점을 드나들게 된 것은 부산 피난가서다.
맨 처음에는 ‘닷 돈쭝은 끼기에 너무 무겁지 않았던가? 내외간의 사랑은 결혼반지의 무게와 정비례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며 두 돈쭝의 반지를 바꾸었다.
몇 달 후 나는 또 두 돈쭝의 금반지를 두 돈쭝 은반지로 바꾸었다. 15년이나 갖은 고생을 함께한 조강지처의 사랑이 반지의 빛깔이나 그 물질적 가치로 좌우되지 않을 것이라는 굳은 신념이 있었다.
그 후 나는 언젠가 이 반지가 반짇고리에서 굴러다니는 것을 본 일이 있다.
나에게는 세 가지 기쁨이 있다.
첫째는 천하의 영재에게 학문을 이야기하는 기쁨이요, 둘째는 젊은이들과 늘 같이 즐김으로써 늙지 않는 기쁨이요, 셋째는 거짓말을 많이 아니하고도 살아나갈 수 있는 기쁨이다.
이렇게 10년이라는 긴긴 세월을 더구나 한 곳에서 훈장 노릇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부인의 덕이다. 그러므로 이 반지는 우리 집사람의 결혼반지라고 해도 좋다.
부부마다 갖고 있는 반지의 의미는 각기 다르다. 어쩜 결혼반지보다 의미 있는 것들도 그들에겐 존재할 것이다.
부인의 반지, 혹은 남편의 반지는 때론 그들 삶의 희노애락 사이를 곡예하듯 왔다갔다하는 몸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메이 김
<젠 보석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