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언니와 나

2006-11-0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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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에 선 아이들’이란 칼럼을 보면서 옛날 생각을 떠올렸다. 여학교에 들어간 첫 학기에 ‘통신부’를 받아본 나는 “도저히 이것을 들고 집으로 들어갈 수 없다” 생각하고 기차에서 뛰어내릴 결심을 했다. 아무도 안 볼 때 덱기에 서서 밑을 내려다보며 한참 서있다가 “어머니 편은 언니와 나뿐인데 내가 죽으면 안 되겠다” 번개같이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통신부를 슬쩍 어머니 앞에 내놓으며 어깨를 움츠리고 낯을 붉혔다. 그런데 뜻밖에도 “너는 소학년에서 6년동안 1등을 하여 나를 기쁘게 해줬지. 웅기 바닥에 그런 아이는 없었다. 첫술에 배부르겠냐? ‘을’이 네 개지만 그래도 ‘갑’은 8개나 된다, 야” (당시의 성적 평점은 갑·을·병·정으로 매겼다) 나는 웃어야할 지 울어야할 지, 우리 어머니는 그런 분이었다. 그 덕에 나는 ‘비탈’에 서지 않고 어른이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우리 집은 소실이 들어오는 바람에 분위기가 엉망이 되었다. 질투하는 여자는 상놈의 집 출신이라나? “그녀는 아들을 낳아주기 위해 들어온 사람”이라며 어머니는 자진하여 정지방과 모든 살림을 물려주고 옆의 방으로 옮기셨는데 그 다음 방이 내가 쓰는 방이었다. 질투하지 않는다던 어머니 방에서 울음을 참는 소리가 늦은 밤이면 들려왔었다.
내 방 다음에는 꾸미지 않은 10평짜리 아주 넓은 방이 있었다. 바닥이 콘크리트인 채 마루도 안 깔고 이중창도 달지 않아서 겨울에는 창문이 덜컹거리고 스산하기 그지없었는데 어른들과 거리를 두기 위해 그 방을 내 방으로 정하고 책상, 책장 따위 얼마 되지 않는 내 짐을 옮겨버렸다. 그리고 창고에서 사과상자를 여러개 가져다 쭉 붙여놓고는 베니아 한 장을 덮으니 침대가 되었다. “야, 천국이다. 나는 양실에 산다!” 쾌재를 불렀다.
그때 어머니의 표정이란! 당장 더운 물을 끓여서 ‘유담뽀’를 안고 오셨다.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에 온기라고는 없는 이 넓은 방에서 너 제정신이야?” 나는 속으로 “그래요, 제정신이니까 어른들이 싫어서 괴롭게 해주려고 일부러 이러는 겁니다” 나는 그때 아버지와 첩이 너무 미웠고 눈물만 짜는 엄마도 싫었다. 언니는 동경에 가있었으니 말 상대도 없고 공부는 뒷전인데 마침 한 울타리 안에 있는 넷째 삼촌네에 가면 책이 지천으로 많았다. 소설책이요 잡지요 손에 잡히는 대로 갖다 읽었다. 그리고 잡지에 난 사람 얼굴을 연필로 밤새도록 그리는 재미에 살았다.
어느 날 교장실에서 부른다 하여 잔뜩 긴장을 하고 들어갔더니 사이또 교장은 만면에 미소를 띠고 편지 봉투를 열더니 나더러 읽어보라고 했다.
언니에게서 온 편지의 내용인즉 ‘이 학교 창립 이래의 성적으로 조선인 학생에게는 준 일이 없는 1등자리를 차지하게 되어 복도 높은 벽에 큼직하게 써붙인 1등 아무개라는 내 이름을 쳐다보며 모교의 명예를 위해 더욱 분발하겠노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한편으로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모교를 위해 더욱 분발 어쩌구 하는 대목에 거부감을 느꼈다. 나는 죽었다 깨도 그런 말을 못하는 아이였고 또 나에게 어떤 불똥이 튈까 걱정이 앞서는 것이었다. 나는 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사사건건 언니와 비교하는 바람에 신물이 나있었다.
입학시험 때 달리기 속도를 재는데 있는 힘을 다하여 악을 쓰고 뛰었다. 그런데 “쉬었다가 다시 재보자”고 했다. 나는 왜 나만 두 번 뛰게 했는지 몰랐지만 사실은 합격선에는 물론 들었지만 언니에 비해 너무 느리니까 혹시 잘못 쟀나 하여 다시 뛰게 했단다. 함경북도 대표, 단거리 기록을 가지고 있는 언니는 ‘조선신궁대회’에서 2등을 했는데 1등인 정임순은 ‘메니지 신궁대회’에서도 1등을 하여 전 일본 대표선수가 되었다. 언니는 붓글씨에 빼어난 소질이 있어서 소학교 때부터 특별지도를 받았는데 1940년 일본 전국을 총망라한 박람회가 청진에서 열렸을 때였다. 화선지 전지에 내리 쓴 언니의 서예작품은 지금 생각해도 걸작이었다. 그림 재봉 뭐든지 잘하면서 공부도 1등이었으니 순전히 기억력으로 때우며 공부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나는 언니처럼 되지는 못했다.
사이또 교장은 나를 찬찬히 들여다보며 “선생님들이 너는 참 이해하기 힘든 학생이라고들 하신다. 학교 규칙도 잘 지키고 예의도 바른데 건방져 보이고 선생을 무시한다. 유행가를 퍼뜨리면서 멋대로 논다. 공부는 뒷전이고 노트도 안 하고, 그런데 예고없이 시험을 쳐도 당황하지 않고 좋은 점수를 받는다고 칭찬하는 선생도 있고, 도대체 너는 어떤 아이냐? 발표는 없었지만 입학시험에 수석으로 들어온 학생이야. 너는 썩 잘 할 수 있다고 믿어. 언니같이 말이야”
딴 생각을 하며 서있는데 그만 가보라고 하여 공손히 절을 하고 물러나왔다. 더 잘 할 수 있다 했는데 방법을 모르는 이 멍청이는 언니같이 1등은 못 해보고 겨우 3등으로 졸업을 했다. 워낙 경쟁이 심한 학교라 머리를 싸매고들 공부하는데 나같은 건달학생은 당해낼 수가 없었다.

김순련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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