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숙희 기자의 주방일기

2006-11-01 (수)
크게 작게
짝퉁 핑크 플로이드

주말에 친구들과 ‘짝퉁’ 핑크 플로이드 콘서트에 갔었다.
짝퉁 핑크 플로이드가 뭐냐고? 이름 그대로 핑크 플로이드를 똑같이 흉내내는 가짜 밴드를 말한다. 호주에서 시작돼 원래 이름이 ‘오스트레일리언 핑크 플로이드’(Aussie Pink Floyd)인 이들은 록뮤직의 전설인 영국의 핑크 플로이드를 추앙하는 마음으로 93년 밴드를 결성했는데, 그 솜씨가 얼마나 기막힌지 96년에 진짜 핑크 플로이드로부터 공식인준을 받아 공연의 음향과 조명, 영상 등 모든 세부적인 것까지 오리지널과 똑같이 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이 짝퉁 밴드가 10월부터 12월말까지 북미주 대도시를 순회공연하고 있는데 40여회의 콘서트 티켓이 거의 모두 매진될 만큼 진짜를 무색케 하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날 그릭 디어터(Greek Theatre)에서 있었던 LA공연도 5,700석이나 되는 야외공연장이 입추의 여지없이 꽉 들어찼다. 관객들은 대개 40~50대의 중년 백인들이었다. 1970년대, 80년대에 핑크 플로이드의 팬으로서 젊음을 보냈다 하면 결코 평범하지 않았을 사람들, 반항과 냉소와 진보의 어느 한 부분에서 광기를 가졌을 법한 그들이 그러나 지금 평범한 아줌마 아저씨의 모습을 하고 모여들었다.
스물여섯살에 처음 핑크 플로이드의 ‘벽’(The Wall) 영화를 보았던 나 역시 그 강렬하고 초현실적인 이미지와 사운드에 깊이 매료돼 “이건 미치광이 아니면 천재가 만든거”라고 생각했었다. 함께 보던 친구도 “약 먹고 만든 것이 분명해”라고 했을 만큼 핑크 플로이드의 사이키델릭한 사운드와 반사회적 메시지는 피끓는 젊은이들의 영혼을 동요시키기에 충분했다.
‘어나더 브릭 인더 월’(Another Brick in the Wall)에서 성난 표정의 아이들이 “우리에겐 교육이 필요하지 않아요”(We don’t need an education.)라고 노래하는 장면, 획일적인 교육과 인간성 상실을 비판하는 장면은 설명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유명하다.
짝퉁의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오리지널 핑크 플로이드의 공연을 본 적이 있는 친구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어머, 똑같애, 너무 똑같애”
심장 박동을 증폭시키는 듯한 선동적인 비트와 함께 풍자적 이미지들이 의식의 흐름에 따라 스크린에 영사되는 시작부터 진짜 공연과 똑같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는 공연 내내 “너무 똑같애, 너무 똑같해”를 반복하며 신기해했다.
사실은 짝퉁이 더 진짜 같을지도 모른다. 오리지널 그룹은 세월이 가면서 늙기도 하고, 스타일이 변할 수도 있지만, 짝퉁은 오로지 오리지널과 똑같이 하겠다는 한가지 목적만을 가지고 연주하므로 추억을 그리워하는 올드 팬의 입장에서는 짝퉁 콘서트가 더 좋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관객들은 지속적으로 환호하고 열광하였으나 생각보다는 무척 점잖았다. 머리를 기르고, 마리화나를 피우고, 거부하는 몸짓으로 젊음을 불살랐을 것이 분명한 그 옛날의 광란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들 나이를 먹은 것이다.
이런 짝퉁 그룹들이 여럿 있다고 한다. 짝퉁 비틀스인 ‘루틀스’가 있고, 비틀스와 메탈리카를 합쳐놓은 패러디 그룹 ‘비탈리카’ 등 위대한 그룹에 헌사하거나 풍자하는 짝퉁들이 상당히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인생 자체가 짝퉁이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했지만 오늘은 어제의 짝퉁이고, 나는 누군가의 짝퉁이고, 오늘 지은 밥은 어제 지은 밥의 짝퉁이니 우리는 매일 짝퉁의 삶을 반복한다. 따지고 보면 롤모델이란 것도 ‘다들 이 사람의 짝퉁이 되시요’하는 소리이고, 크리스천이란 것은 ‘예수의 짝퉁이 되려는 사람’들이 아닌가.
가짜가 진짜가 되고 진짜가 가짜가 되기도 하는 세상에선 짝퉁이 더 솔직하고 진실한 것일지도 모른다. 다들 똑같은 인생을 갖고 태어나서 어떻게든 다르게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쳐봐야 거기서 거기, 차라리 멋있는 짝퉁으로 사는 것이 순수하고 겸손한 자세일지도 모른다는 개똥철학까지 생겨났으니, 짝퉁 콘서트 한번 보고 와서 너무 거창했나?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