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6-10-2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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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삐와 공룡치킨

엄마는 결국 한국으로 가셨다. 그 덕분에 난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아이들을 봐줄 사람이 없으니 직장을 그만 둘 수 밖에. 도대체 앞으로 페이먼트는 어찌 내고 살라는 것인지...
엄마는 한두달 안에 미국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짐을 싸가지고 가셨다. 밤이면 밤마다 우는 엄마를 위해 내린 특단의 처방전인 것이다. 한국을 잠깐 가고 싶으셔도 낮에 승욱이 봐줄 사람이 없어서 엄마가 못가시고 계셨다. 하지만 더 이상 엄마를 이곳에 붙잡고 있다가는 무슨 일이 날 것 같았다.
집에는 아이들과 나뿐이다. 아, 그리고 예삐가 집을 함께 지킨다. 며칠 전부터 계속해서 비가 내린다. 아침 일찍부터 큰아이학교 챙겨 보내랴 승욱이 제 시각에 스쿨버스 태워 보내랴 정신이 없다. 보통 엄마들이 다 하는 일을 왜 이리 쩔쩔매고 있는 것인지... 도대체 나 엄마 맞아? 한심한 것 같으니라고, 쯧쯧쯧...
승욱이는 공룡치킨을 아침으로 먹고 간다. 치킨이 몇 마리 남지 않은 것을 깜박잊고 사오질 않았더니 아침에 겨우 치킨이 4마리뿐이다.(최소한 8마리를 먹어야함) “욱아, 엄마가 어제 비가 와서 마켓을 못 봐왔어. 오늘 치킨 4마리밖에 없거든? 그냥 요기만 하고 학교 가. 알았지?”
치킨 4마리를 구워주고 돌아서서 큰아이 책가방을 챙겨주고 부산스럽게 왔다갔다 거리니 승욱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욱아~~잠깐 기다려. 형아 옷 좀 챙겨주고 갈께~” 승욱이 우는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거기에다가 뭐가 그리 분하고 원통한지 발까지 구르고 난리다.
난 뛰어가 승욱이를 보니 벌써 치킨을 다 먹고 빈 그릇으로 앉아있다. “어? 욱이 벌써 다 먹은거야? 더 먹고 싶어서 그런거지? 미안, 엄마가 오늘 꼭 사다놓을께. 주스로 배를 채우고 오늘만 학교에 가. 알았지?” 뭐가 그리 화가 났는지 심통을 부리고 걷지도 않으려 해서 계속 안아주었다.
아침시간에 큰아이는 학교에 갈 때 꼭 예삐를 함께 차에 태워간다. 아이 둘과 개한마리를 차에 싣고 각자 내려줄 곳에 내려주고 집에 돌아오니 집이 온통 폭탄을 여기저기 터트려 놓은듯하다.
아이들이 벗어놓은 옷가지며 흐트러진 승욱이 장난감등을 치우고 있는데 식탁 밑 구석에서 ‘쩝쩝쩝...’소리가 들린다. 식탁 밑을 들여다보니 “허걱? 야! 이 나쁜 변견!~ 이녀석 너 거기 안서!! 너 오늘 잡히면 가만 안 놔둘거야~~ 야~이 나쁜놈아~”
예삔지 여삔지 이놈의 개가 승욱이 먹으라고 아침에 만들어준 공룡치킨 4마리 중 3마리나 훔쳐다가 식탁 밑에 숨겨두고 아이들 학교간 뒤 혼자 유유자적 먹고 있는것이 아닌가? 오늘아침에 왜 이리 승욱이가 화가 났었는지 이제야 사태파악을 한 난 도저히 무례한 저 개를 놔둘 수가 없다. 나에게 잡히지 않으려 요리저리 도망 다니다가 결국 내 손에 붙잡혔다.
“너, 오늘 딱 걸렸어. 이 나쁜 놈아! 4마리밖에 없었던 공룡치킨, 귀하디귀한 치킨을 그것도 승욱이 아침밥을 빼앗아 먹냐? 너 이번이 처음 아니지? 어쩐지 아침마다 승욱이가 너무 빨리 치킨을 먹는다고 생각을 했지. 그 뜨거운 것을 말이야. 요놈, 이 나쁜 놈!”
난 당장 개 줄을 사다가 집 계단 기둥에 예삐를 묶어두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눈으로 쳐다보고 가장 서러운 목소리로 낑낑거린다. 자유를 달라는 거다. 언제부터 승욱이 밥그릇에 있는 것을 훔쳐 먹었는지 알 수가 없다. 승욱이가 말이라도 할 줄 알면 나에게 쫑알쫑알 일렀을텐데, 눈이라도 보이면 자기 것 가져가지 못하게 막고 있었을텐데... 그동안 예삐 녀석이 승욱이 과자며, 간식 등을 계속 훔쳐 먹고 있었다는 것을 안 난 괜히 승욱이에게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욱아, 이젠 엄마가 아무도 승욱이것 못 빼앗아 먹게 옆에서 지켜줄께. 욱이 미안해...”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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