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무식하면 용감하다

2006-10-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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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팔이 녀석이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며 다른 형제들을 귀찮게 치대고 있었다.
그러다가 뺀질뺀질한 자기보다도 덩치가 딱 두 배만한 진짜 힘센 람보(별명임)하고 누가 힘이 센가 말싸움 끝에 선을 그어놓고 손을 서로 맞부딪쳐 발을 먼저 떼면 지는 게임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서로 처음에는 신나서 끼끼득 웃으며 깔깔깔 좋아서 장난으로 하는 듯했다. 그러나 잠시 후 갑자기 커다란 고목 꺾이는 둔탁하고 커다란 소리가 “뚜뚜뚝” 하고 나더니 병팔이가 “악” 외마디 소리를 질러대는 것이었다.
병팔이 손바닥을 람보가 툭하고 쳤는데 병팔이가 안 넘어가려고 기를 쓰고 있었고, 언제까지 안 넘어가나 보자며 자신만만한 람보가 다시 한번 살짝 건드린 것이다. 이때 그 힘에 못 이겨 그만 병팔이의 넓적다리의 뼈가 뚝하고 그 자리에서 사정없이 부러져버린 것이었다.
병팔이는 힘없이 푹 쓰러져버렸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눈물만 글썽이며 입술을 달달거리고 아파서 쩔쩔매고 있었다. 빨리 응급조치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어서 911에 신고하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신고를 하고 911구조대를 기다리는 동안 선교회에서 한 골통하는 멍키(원숭이)라는 별명을 가진 녀석이 모든 이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당당하게 자신이 병팔이의 다리를 고칠 수 있다며 뚝 소리가 난 다리를 들어올렸다 내렸다, 옆으로 찢었다, 하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병팔이는 속으로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도 너무 아파 말이 입 속에서 맴돌 뿐 밖으로 내뱉지를 못하고 눈물만 흘리며 멍키를 원망에 가득 차서 쳐다보는 것이었다. 멍키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병팔이의 다리를 잡아당기고는 툭 내려치고 하는 일을 반복해서 하는 것이었다. 병팔이는 거의 실신상태였다.
911구조대가 멍키가 어처구니없는 치료를 하는 사이에 벌써 왔고 병팔이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병팔이는 다리가 부러졌던 것이다. 장시간에 걸친 수술하고 5일 동안이나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몇달 동안 지금까지도 고생하며 다리를 절뚝거리고 있다. 나중에 멍키에게 “야 임마 너 왜? 병팔이 형 다리를 들었다놨다 했냐?”
“저기요 제가 고칠 수 있었어요.”
“너가 어떻게?”
“있죠. 텔리비전에서 보니까 그렇게 하면 되던데요.” 병팔이에게는 미안하지만 그 말에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부러진 다리를 들고 좌우로 흔들고, 다리를 뺏다 넣다하며 집어던지기까지 했으니 그 고통이 오죽했겠는가! 그러나 천진난만한 멍키는 전혀 죄의식을 못 느끼는 듯 했고 자신은 최선을 다해서 치료하고자 했다는데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참고로 우리 멍키는 그야말로 꼴통이고,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웃음 보따리였다. 한번은 오피스에서 “멍키, 멍키”라고 스피커로 불러대자 멍키는 부엌 옆에 있는 스피커 앞에서 두 손을 곱게 앞으로 모으고 위에 달린 스피커에다 대고 계속 “네, 네, 네”하면서 스피커에게 대답을 해대는 것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한 형제가 눈물을 흘리며, 오피스로 찾아와서 이야기하고는 다들 한참을 웃었던 일화가 있다.
병원에서 혼자 외롭게 있었던 병팔이는 선교회의 QT가, 성경공부가 너무나 그립고 형제들이 그리워 도저히 있지를 못 하겠노라며 다시 선교회에 오고 싶다고 매일 전화를 해대고 결국 휠체어에 의지하여 병원을 졸라서 생각보다 빨리 선교회에 돌아왔다.
람보는 자기는 잘못이 없다며 단지 게임을 했을 뿐이라며 모두들 자기를 원망하는 것 같아 민망하다는 듯한 얼굴로 한동안 죄인처럼 지내야 했다. 힘 센 것도 죄가 되나요??

한영호 <나눔선교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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