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을 녘에 용서에 대해 생각함

2006-10-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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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容恕)라는 말은 받기도 쉽지 않지만 주기도 쉽지 않은 말입니다.
容이라는 말은 집이라는 말과 골짜기라는 말이 합해진 말로서 집과 골짜기는 무엇인가를 잘 받아들인다는 뜻이고 恕라는 말은 같다는 如 말과 마음 心이라는 말이 합쳐진 말로 마음을 같이한다는 말입니다.
제게는 아직 받아들일 수도, 마음을 같이 할 수도 없는 두 부부가 있습니다.
조용히 묵상하면서 그들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하기도 하지만 제 마음의 상태가 거기까지인지 그것이 잘 되질 않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누군가도 나에 대해 받아들이지도 마음을 같이 할 수도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쳐왔습니다.
용서해야 할 사람과 용서받아야 하는 사람은 나와 상관없이 멀리에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바다와 밭을 좋아하는 것은 늘 받아들여 생명체를 키워내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들에게 바다와 밭을 보고 살라고 말도 해왔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되어보려는 수행은 게을리 한 것 같습니다.
여기 두레마을은 그야말로 결실의 계절입니다. 익어 가는 열매들이 아름다운 것은 그들이 나무와 늘 함께 하고 있고 그들로부터 끊임없이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비어 가는 가을 녘이 아름답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한 것은 같이하고 받아들이는 삶과
또 누군가 자기를 필요로 하는 것들에게 자기를 내어주기 때문인가 봅니다.

조규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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