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로랜드’방문 판매원71세 그레이스 윤씨

2006-10-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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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뛴 20년… 행복한‘맏언니’

입사후 Top 10 밀려난적 없어
포상 여행 재미로 활기찬 나날

한 우물 파기 20년이면 결코 간단한 세월이 아니다.16일 20주년을 맞는 로랜드(대표 노말선) 방문 판매원 중 회사와 같은 세월을 해온 이가 있다. 미 전국 로랜드 1,000여명의 컨설턴트 중 가장 맏언니이기도 한 그레이스 윤(71)씨가 바로 그 주인공. 지난 86년 로랜드 창립과 함께 세일즈의 세계로 뛰어든 윤씨는 20년을 한결같이 전국 탑 10 안에서 밀려본 적이 없는 억척, 악착 세일즈 우먼이다. 물론 지난 88년에는 전국 1등의 영예도 안아봤다. 그러고 보니 20년 세월동안 컨설턴트로서의 모든 걸 누려본 셈이다. 그러나 계속 윤씨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도대체 20년간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수줍음도 많은데다 이야기도 조분조분하다. 어디하나 억척과는 거리가 닿아 보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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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방문판매원 생활 20년을 맞는 그레이스 윤씨가 88년 탑세일즈 맨에 등극한 뒤 찍은 사진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남들도 다 그래요. 특히 가족들은 이 성격으로 영업해 먹고산다는 게 신기하다고 말할 정도죠. 물건을 팔면서도 별로 틀린 건 없어요. 갑자기 성격이 돌변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냥 조용조용히 물건의 장점에 대해서 설명하고 성심껏 답해 주고 그러다 보면 친구도 되고 오랜 지기도 되고 그러죠.”
혹시나 전교 1등에게 공부 비결을 물었을 때 ‘잘 거 다 자고 학과수업에만 충실했어요’라는 모범답안이 아닐까 싶었지만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이의 진솔함에 반하게 된다.
“처음 시작할 땐 방문 판매원이 10여명 남짓이었죠. 지금이야 전국 탑이면 판매액 100만달러가 넘는 시대이지만 88년 1등 했을 때만 해도 20만달러를 고작 넘겼을 정도입니다. 돌이켜보면 그땐 한인사회도 작았고, 경제력도 지금만 못했고, 명품 부엌용품에 대한 인식도 없었을 때입니다. 그래도 그땐 100달러, 200달러씩 할부도 해주고 사람들간에 정도 있고 재밌었습니다.”
20년 전을 회상하는 그레이스씨의 눈가가 환해진다. 당시 휘슬러 냄비 2개들이 한 세트가 320달러 했다고 했다. 20년 새 가격은 2배가 뛰었고, 영업사원의 숫자는 100배 이상이 늘었다. 1인당 판매액수도 3배 이상 늘었다.
이처럼 많은 것이 변했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바로 여전히 활기차고 씩씩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의 마음가짐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 포상으로 로랜드 컨설턴트들에게 주어지는 세계여행의 쏠쏠한 재미도 빼놓을 수가 없단다.
“20년간 한해도 거르지 않고 여행을 다녔습니다. 미국에서부터 캐나다, 유럽 등 세계 각국을 다녔죠. 로랜드 탑 세일즈맨들에게 주어지는 여행 포상은 늘 최상급 패키지입니다. 그 도시의 가장 좋은 호텔과 고급 먹거리들로 짜여진 일정은 늘 내가 로랜드 직원임에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래서 윤씨는 20년간 유럽, 아시아, 북남미 등 곳곳을 돌아다녔다. 지난해에는 퀸메리 2호를 타고 노르웨이 등을 경유한 유럽 크루즈를 했단다.
세일즈 통해 사람을 사귀는 것만큼이나 가장 재밌고 행복한 것이 여행이라고 그는 말한다.
“어느새 일흔이 넘었지만 여행가도 늘 앞장서서 젊은 사람들 피해주지 않으려 해요. 방문판매를 앞으로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하는 동안은 건강하고 즐겁고 활기차게 하려 합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껏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생물학적 나이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하루하루를 활기차고 즐겁게 사는 그야 말로 진정한 청년이 아닐까.
<이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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