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숙희 기자의 주방일기

2006-10-1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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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 독서클럽

미국에서는 서머 리딩이라 하지만 한국은 가을 독서다.
미국에서 반평생을 살았어도 더운 여름 휴가철보다는 선선한 바람 불고 낙엽이 흩어지는 가을이 책 읽기에 좋은 계절이라 느껴진다. 이 가을을 맞이하여 평소 책을 많이 읽지 않는 나 자신을 채찍질하기 위해 ‘한빛 독서클럽’에 가입하였다.
한빛 독서클럽이란 ‘한’국일보를 ‘빛’내는 독서클럽이라는 다소 거창한 이름의 북클럽으로, 두달전 편집국의 동료들이 ‘기자들의 정서함양을 통한 독자들의 지식의 재분배’를 목적으로 발족시킨 모임이다. 일인당 연회비 20달러만 내면 회원이 될 수 있고, 매달 회원들의 희망도서(교양증진 및 기사작성에 도움되는 것에 한함)를 단체 구입하여 서로 나눠보는 모임으로 가끔은 토론회 같은 이벤트도 만들어 대화의 시간도 갖기로 하였다.
한달 늦게 가입한 관계로 뒤늦게 서가로 달려가니 새로 구입한 도서는 거의 다 대출되고 남은 것이 몇권 없었다. 그 중 재미있을 것으로 보이는 ‘추리특급’(노벨문학상 수상작가들의 미스터리 걸작선)을 대출하여 이틀만에 읽어치운 나는 다시 ‘디 에이트’(The Eight·캐서린 네빌 저)라는 2권짜리 대하역사 스릴러를 빌려와 컬럼버스 데이 연휴 동안 독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고 보면 세상 많은 일들이 마음먹기 나름이다. 전에는 도무지 한가하게 앉아 책을 읽을 짬이 없는 것 같았는데 이제 내가 독서클럽 회원이다, 하니까 회원의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자꾸 대출하게 되고, 일단 대출하면 제때 반납해야 하니까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읽기 시작하고, 한번 읽기 시작하면 스토리에 빨려 들어가 끝까지 단숨에 읽게 되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이 없다’는 것인데 이처럼 일단 재미있는 책을 손에 잡고 읽기 시작하면 없던 시간이 어디서 나오는지 신기하게 생겨나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그러니까 잠 한두시간 덜 자고, 밥 간단하게 해먹고, 빨래 청소 하루이틀 뒤로 미루면 책 한권 읽을 시간은 쉽게 나오는 것이다. 그런다고 해서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있는가 하면 그런 것도 절대 아니다.
그리고 우리 솔직히 얘기해보자. ‘주몽’ 볼 시간은 있어도 책 읽을 시간은 없는 것 아닌지 말이다.
독서에 관하여 김진홍 목사는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나의 어머니가 내게 가르쳐주신 것들 중에 가장 소중한 것이 책 읽는 습관이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부터 독서습관이 몸에 배게 하셨다. 우리 형제들이 책을 읽지 않고 잡담을 하고 있으면 엄하게 꾸지람하셨다. 일본에 9년간이나 사셨던 어머니는 “일본 사람들은 공원에서나 열차에서나 시간만 나면 조용히 책을 읽는데, 우리 조선 사람들은 모이면 화투나 잡담으로 헛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하시면서 조선이 일본에 뒤지게된 것은 책을 읽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흉이나 보면서 살았기 때문이라 하셨다.
그래서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읽을거리를 열심히 구해다 주셨다. 그러나 그 시절에 두메산골에서 어린이에게 읽을거리가 흔할 리 없었다. 어머니는 친척들 집을 다니며 심리학개론이니 법학통론이니 하는 책들을 가져다주셨다. 초등학생인 내가“그런 책들은 한자가 많고 어려워서 못 읽겠습니다.”고 여쭈면 “못 읽어도 책을 들고만이라도 있어라. 책읽기는 습관인 것이니 책을 들고만 있어도 장래 유익한 밑천이 되는 것이니라”하고 일러주시곤 하였다.”
그 덕분에 김목사에게 독서는 생활의 일부가 되었고 지금도 손에 책이 없으면 몸에 균형이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하였다.
나폴레옹은 말안장 위에서도 독서를 하였고, 컴퓨터 황제 빌 게이츠는 “내가 살던 마을의 작은 도서관이 나를 만들었다”며 “컴퓨터가 책을 대신할 수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가 보기에 책을 읽을 것 같지 않은 부시 대통령도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고, 미국 대통령들은 휴가 때 평균 15권의 책을 읽는다는 통계도 있다.
내 주위에서도 좋은 글을 쓰고 존경스런 사람들은 모두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하여 부지런히 책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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