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6-10-0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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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김민아

하나, 둘, 셋 GO!!

난 어렵사리 구한 승욱이의 스피치 선생님을 꽈~악 붙잡았다.
그런데, 승욱이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워낙 어중간한 시간이라 주중에는 스피치시간을 따로 낼 수가 없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승욱이 학교에 가서 가르칠 수도 없다(거리가 LA에서 터스틴까지는 장난이 아닌 거리다). 그렇다면? 월넛 교육구와 스피치 선생님과 난 머리를 짜고, 아이디어를 짜고, 생각을 짜고, 짜고, 짜고…
결론은 매주 토요일 아침 승욱이는 스쿨버스를 타고 스피치 선생님 집으로 가는 것!! 이렇게 결론이 날 때까지 서로가 밀고, 당기고, 끌고 난리도 아니었다. 승욱이란 한 아이의 스피치를 위해 노란 스쿨버스가 매주 토요일 아침 8시20분이면 어김없이 우리 집 앞으로 온다는 것을 결정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스쿨버스 운전해 주시는 분은 승욱이가 스피치 공부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다시 집까지 데려다 주는 일을 매주 토요일마다 해야 하는 것이다.
드디어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중간 크기의 노란 스쿨버스를 타고 승욱이는 출발~ 난 그 뒤를 따라 승욱이 스피치 교실로 함께 간다. 엄마도 함께 스피치를 배워야 한다고 스피치 선생님이 처음부터 강조하셨다. 하지만 똘똘이 승욱이 녀석 엄마가 함께 옆자리에 앉아 있으면 분명히 자세도 흐트러지고, 나를 의지할 것을 알기에 난 멀리 떨어져 앉아 수업에 참관하는 것이다.
첫 시간부터 자세가 영 학생의 자세가 아니다. 책상에 앉혀 놓으면 자기 맘대로 자리 이탈에, 하품은 연신 하고 있고, 산만하기는 이루 말할 수 없고, 거기다 버릇없기까지… 선생님이 가끔씩 날 쳐다본다. ‘움메, 기죽어. 우리아들 보기보다 똑똑하다고 큰소리를 칠 땐 언제고 이리 기가 죽었을까. 승욱아, 제발 엄마 기 좀 살리도…’
30분쯤 수업을 했을까? 선생님이 수업을 중단하고 잠시 이야기 좀 하자고 한다. 난 고개를 푹 숙이고 선생님 옆자리에 앉았다. 다섯 발자국 앞에 승욱이는 선생님이 틀어놓은 신나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고 고개를 끄덕이고 박자를 맞추고 있다. ‘으그, 녀석…’
선생님은 승욱이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고 수업을 진행해야겠다고 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어떻게 수업을 하는지 승욱이 학교도 한번 가봐야겠다고 했다. 그리고 승욱이와 함께 생활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 스피치 시간에 한번씩은 참관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 이 선생님 장난이 아닌 걸? 제대로 걸렸네!’
일단 첫 시간은 승욱이를 파악하는 시간으로 갖겠다고 했다. 그리고 빠른 시간 내에 승욱이 학교를 방문해서 승욱이를 몇 시간 지켜보고 어떤 식으로 교육을 해야 할지 방향을 결정하겠다고 했다.
첫 시간, 두 번째 시간, 세 번째 시간… 별로 달라지는 것 없이 승욱이의 스피치 시간이 흘러간다. 한 달이 지나서야 겨우 책상에 앉아 있기가 시작되었다. 난 매주 따라 가던 스피치 시간을 2주에 한번 따라가고 있다. 스피치를 시작한지 두 달이 넘어가던 어느 토요일, 승욱이의 수업을 멀리 앉아 참관하고 있었다.
선생님과 승욱이가 바닥에 앉아 공굴리기를 한다. 선생님은 정확한 발음으로 “One, Two, Three, GO!”를 외치면서 승욱이에게 공을 굴린다. 승욱이는 도대체 이 소리는 뭐고 왜 자꾸 자신의 앞으로 공이 굴러오는지 귀찮다는 듯이 앉아 있다. 선생님은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승욱이에게 똑같이 소리를 내고 공을 굴린다.
그리고 나서 선생님은 승욱이에게 공을 쥐어 주었다. “승욱! 내가 One, Two, Three, GO!를 외치면 나에게 공을 굴리는 거야 알았지? 준비 됐니? One, Two, Three, GO!”
‘설마… 승욱이가 공을 굴릴 수 있을까? 아니겠지, 못하겠지’ 그 순간 승욱이가 공에다가 손을 올려놓으면서 선생님 앞으로 공을 스르륵 굴리는 것이 아닌가! 선생님과 난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서로의 생각은 아마도 ‘봤지? 얘가 내 아들이야…’ ‘봤지? 얘를 내가 가르쳤어…’라고 생각하는 눈빛이다.
한번 공 굴린 것으로는 검증이 안 되니 또 굴리게 하고 또 굴리게 하고… 언제나 승욱이를 과소평가 하는 무심한 엄마가 또 한번 무너지는 날이다. 선생님은 아이가 말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고 듣는 훈련이 먼저라고 말했다. 들어야 말을 한다고. 앞으로 승욱이가 얼마만큼 가야 말을 할지는 모르지만 오늘의 감동을 난 잊지 않으려 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누구든 태어나면서 말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신생아 승욱이의 듣기가 이제 겨우 시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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