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파 사러간 봉두 잠수함 타다

2006-09-3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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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에 선 아이들

봉두, 4세 때 엄마가 미국사람하고 결혼을 하여 미국을 이민을 왔다. 봉두는 좋은 대학에서 비즈니스를 전공하였고, 교환학생으로 한국 연세대에서 몇 년을 공부하여 한국말도 아주 잘하는 머리 좋고, 인물도 훤칠한 멋있는 청년이었다.
봉두에게는 딸이 하나 있고, 그 딸아이의 엄마와는 오래 전 이혼한 상태였다. 자신의 딸은 봉두의 어머니가 맡아서 돌보고 계시는데, 봉두는 자신의 딸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한 삶을 살 것이며, 어떻게 하든 약물을 끊어 보겠노라고 다짐과 다짐을 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툭하면 머리 좋은 것 티내려고, 성경의 이론을 늘어놓으며 잘난 척을 해서 다른 이들에게 욕을 먹기가 일수였고, 욕심이 많아서 다른 형제들과 부딪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봉두는 생각하는 것이 마치 어린아이와 같았다.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는데도 이상하게 그렇게 어린 행동과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나이답지 않게 귀엽고, 머리가 좋아 선교회 일하는 것을 곧잘 돕기도 해서 필요할 때 일을 시키기도 하였다. 특히 부엌일을 깔끔하게 하고, 음식을 잘해서 한동안 주방을 맡아서 일했었다.
봉두는 한번 조르기 시작하면 끝이 없었다. “목사님, 우리 TV봐도 돼요?” “안돼” “목사님, 목사님, 딱 한번만, 딱 한번만, 아이 목사님…” 이건 여자도 아니고 갖은 아양을 다 떨면서 종일 따라다니는 통에 OK를 하지 않을 수 없도록 그렇게 끈질기게 부탁하곤 했다.
그런 봉두가 한동안 주방 일을 하지 않다가 음식을 할 사람이 없어서 당분간 주방장 일을 다시 하게 된지 며칠 안 돼서이다. 그 전전날 시장을 다 보고 왔는데 마침 파가 다 떨어졌다는 것이다. 파는 사실 안 넣어먹어도 상관이 없는데… 아무래도 계획적이었는지, 아침부터 얼굴 색이 안 좋아 보여 절대로 혼자서 무슨 일을 하지 못하도록 당부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부탁했건만, 파 사러 가야 한다며 사무실에서 40달러를 받아 챙겨들고는 그대로 잠수를 타버린 것이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선교회 차를 타고 마켓을 갈 때 꼭 다른 형제와 함께 가도록 하였는데 하도 혼자 가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다른 형제가 귀찮아 혼자 갔다오라며 자기는 차에서 내려버린 것이었다. 선교회 차는 형제들이 타고 몇 번이나 도망갔다 왔는지 모른다. 나갈 때 그냥이라도 나가지 꼭 차를 훔쳐 타고 나가니… 참 기가 막힌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파를 산다고 나간 봉두를 기다리며 나눔의 식구는 쫄쫄쫄 굶게 되었다.
돈 40달러에 지금까지 쌓아올렸던 신뢰며, 정이며, 미래까지도 다 팔아먹다니… 안타까운 마약중독의 실상이 아닐 수 없다. 파 사러 간 봉두는 며칠 후 울며불며 초라한 몰골로 들어왔다. 무릎을 꿇고 빌고 또 빌고, 매달리고, 또 매달리고…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예수님의 사랑으로 포용을 하느냐? 아니면, 다른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단호하게 자르느냐? 갈등과 갈등이 밀려왔다. 고통스러웠다. 그냥 용서를 하자니, 습관적인 고질병을 눈감아주는 격이었다.
고심 끝에 갈 곳을 찾을 때까지 선교회에서 머물 수 있도록 하였다. 봉두는 생각생각 끝에 알래스카로 날아갔다. 형제들은 봉두에게 알래스카에 가면 곰에게 마늘을 먹여서 여자를 하나 구하라고 충고하여 주었고, 봉두는 비장한 각오로 떠났다.
벌써 수년이 되었다. 봉두는 지금 테리야끼집 사장님이 되어 있다. 얼마 전 전화가 와서는 비행기표를 보낼 테니 놀러오란다. 끝내 주게 멋있는 곳, 펄펄 살아 날뛰는 연어에, 알래스카 킹 크랩, 곰쓸개까지 책임진다고 한다. 가슴이 뿌듯했다. 나는 누가 파 사러 간다면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지만, 그래도 알래스카 킹 크랩을 생각하며 위로를 받는다. 언젠가 내가 은퇴하면 여기 저기 형제들 사는 모습을 구경이나 다녀야겠다.

한영호 <나눔선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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