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니 열풍

2006-09-3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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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작게… 더 똑똑하게… 신상품 진화 끝이없다

깜찍하고 귀여운 ‘아이팟’

파산위기 애플사 부활시켜


LG전자 초컬릿 폰 대박신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 정착

HSPACE=5

그동안 세계 셀폰 시장에서 삼성의 독주에 브레이크를 건 LG 초컬릿 폰. 초컬릿처럼 슬림하고 작다하여 붙여진 애칭이다.

HSPACE=5

▲파산위기 애플사를 부활시킨 아이팟에 이어 더 작고 슬림해진 아이팟 나노. 목걸이처럼 걸어도 전혀 부담이 없을 만큼 초미니다.

혹시 양쪽 주머니에서 손가락 2개만한 휴대폰과 껌 한 통 크기의 MP3 플레이어가 나오고 핸드백에는 0.5온즈짜리 미니 향수가 굴러다니고 있지 않은지. 게다가 예쁜 구두며 가방을 미니어처로 만든 귀고리가 귀 끝에서 달랑거리고, 미니 스커트를 입었으며, 아침에 미니 오븐으로 식빵을 구워먹고 나왔다면, 당신은 미니 트렌드의 산증인이나 다름없다. 올 가을 패션계에선 여전히 빅 백(big bag)과 몸을 과장되게 부풀리는 상의가 유행하는 등 큰 것이, 그것도 부담스럽게 큰 것이 아름답다는 불문율이 팽배해 있긴 하지만 전자업계와 액세서리는 갈수록 작고 아담한 것에 기업의 사활을 걸고 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진부한 명제를 들이밀지 않더라도 바쁘고 분주한 현대인들에게 미니는 곧 실용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실용성 덕분에 최근 나오는 제품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울트라 미니’로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미용·패션 용품부터 전자 기기, 심지어 자동차까지. 나날이 더 작아지는 미니 제품은 백화점의 쇼윈도를 장악한 데 이어 우리의 생활 방식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이른바 미니 열풍이다. 최근 첨단 기기와 자동차 등에서 급부상하기 시작한 이래, 필수 샤핑 아이템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미니 제품의 겉과 속을 들여다봤다. 


■작아서 사랑스러운 미니

덩치와 몸값은 비례하지 않는다. 작아도 그만한 가치를 지닌 게 미니의 강점이다. BMW 미니쿠퍼나 폭스바겐의 뉴비틀은 작아도 가격이 결코 만만치 않다. BMW 미니쿠퍼 미니는 3만달러, 폭스바겐 뉴비틀은 2만2,000달러 선으로 웬만한 중형차 가격과 맞먹는다. 이처럼 차의 크기가 곧바로 가격으로 연결되는 시대는 지났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예쁜 디자인은 품질에 우선하기도 한다.
화장품 업계에서도 미니의 열풍이 불고 있다. 특히 화장품은 용량과 가격이 비례하는 정직한 제품. 그래서 작은 제품은 당연히 가격도 저렴하다.
드럭 스토어는 물론 최근 유명 브랜드 화장품들도 앞다퉈 트래블 사이즈(travel size)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제품의 미니어처 화장품을 선보이고 있다. 용기가 작고 앙증맞아 여심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화장품이 피부 타입에 맞는지 일단 저렴한 가격에 써보고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성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미니어처 화장품의 선두주자는 록시땅(loccitane). 록시땅은 비누에서부터 향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의 미니어처를 선보이고 있다. 샤워젤, 핸드크림, 쉐이빙 젤, 로션, 향수 등을 0.5~2.5온즈 크기의 초미니 사이즈를 내놔 인기를 끌고 있다.
또 액세서리에도 귀엽고 앙증맞은 미니 열풍은 거세다.
코치에서는 코치 캔버스 지갑을 엄지손가락 크기 만하게 미니어처로 만들어 키체인 장식으로 걸었다. 주시 쿠튀르(Juicy Couture)도 주시가 만드는 핸드백을 일반 반지 크기의 팬던트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으며 크리스천 디올 화장품은 디올이 만드는 핸드백을 미니어처로 만들어 화장품 케이스로 활용해 젊은 여성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처럼 여성용품에서 미니어처는 오리지널 상품보다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짝퉁이 아닌 원작 그대로의 효과를 얻을 수 있어 젊은 층에 어필하고 있다는 것이 패션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휴대하기 좋다는 것도 미니의 장점이다. 무전기처럼 시커멓고 큼지막했던 셀폰 초창기 모델(일명 ‘냉장고폰’)을 떠올려보길. 주머니에 잘 들어가지 않았고, 넣는데 성공한다 해도 무게 탓에 옷이 축 처지곤 했다.
스타일 구기게 하는 또 다른 전자기기로 노트북 컴퓨터를 빼놓을 수 없다. 잘 차려 입은 수트 차림에 멋없이 커다란 노트북 가방은 그야말로 옥에 티. 손바닥만한 미니 노트북의 출현은 우리의 몸을 한결 가볍게 해줬다.
하지만 무엇보다 미니가 좋은 이유는 귀엽고 세련된 느낌을 주는 디자인 때문이다. 특히 최근 출시되는 미니 전자제품은 검은색이나 흰색 등 색상마저 모노톤이라 고급스러운 느낌까지 준다.


전자제품 업계에선 “다양한 사이즈와 색상, 디자인의 제품이 한바탕 쏟아진 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미니멀리즘 트렌드가 심플하고 세련된 것을 선호하는 20~30대 젊은층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니가 기업경쟁력

손아귀에 쏙 들어오는 애플사의 MP3 플레이어 아이팟(ipod)은 소비자는 물론이고 애플에게도 깜찍하고 귀여운 존재다. 아이팟이 파산지경까지 몰렸던 애플을 부활시켰다는 이야기는 이제 구문이 돼버렸다. 그 뒤 CEO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살리기 위한 최우선 처방으로 디자인 혁신을 꼽았다. 디자인 전문가에게 전폭적인 재량권을 부여했고 CDO(최고 디자인 책임자)라는 직위까지 만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아이팟을 시장에 출시한 2001년부터 현재까지 총 4,200만대가 팔렸으며 2005년 4분기에만 1,400만대의 실적을 올렸다. 전 세계 MP3 플레이어 시장의 70%에 해당하는 수치다.
미니 디자인으로 돌파구를 찾은 것은 비단 미국기업뿐 아니다. 삼성과 LG 등 한국 대표 셀폰 기기 제조사들은 ‘작고 날씬하게’를 모토로 세계시장에서 동종업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
특히 LG전자는 최근 작고 날씬한 ‘초컬릿폰’으로 대박 신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LG 디자인센터 측은 “기존의 휴대폰과 다른 것을 찾기 위해 2개월간 골몰했다”며 “초컬릿폰은 ‘생략의 미학’을 추구했다”고 설명한다. 군더더기를 생략한 디자인이 소비자들을 만족시킨 것이다.
이처럼 미니 제품은 기업이 살아남기 위한 경쟁력이기도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계시장에서 기술력을 과시하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세계 셀폰 업계에 미니 바람이 처음 불기 시작한 건 1990년대 후반. 그 후 디지털 카메라, MP3 플레이어 내장 등 기능이 추가되면서 크기가 다시 커졌다가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 웬만한 기능을 다 갖추고도 작게 만들 수 있게 됐다.
이외에도 랄프스나 알벗슨 등 수퍼 마켓은 물론 BOA, VISA 등은 크레딧 카드까지 키체인에 걸 수 있도록 기존 카드의 1/3수준으로까지 줄여 제작했다. 지갑에 넣었다 뺐다 하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현대인들의 입맛에 맞춘 시도였고, 최근엔 이 미니 카드를 만들지 않는 마켓과 은행이 없을 만큼 ‘평범한’ 트렌드가 돼 버렸다.

■수요가 공급을 주도하는 시대는 갔다

그러나 모토로라의 미니 모토처럼 손에 쥐기 불편할 정도로 작아진 제품들은 가끔 ‘정말 우리에게 미니가 필요한가’ 되묻게 만든다. 곳곳에서 선보이는 미니 제품은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것을 넘어, 우리의 생활 방식을 좌우하고 있다.
“이전에는 기업이 소비자의 욕구를 조사하고 그에 맞는 제품을 개발했다. 하지만 애플은 소비자가 미처 깨닫지 못한 필요를 창조해냈고 아이포드가 그 필요를 충족시켰다. 소니 워크맨의 등장이 사람들로 하여금 거리에서 음악을 듣게 했던 것처럼, 아이팟 역시 하나의 문화로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고 있다.”(애플 관계자)
미니를 알고 나니 미니가 필요해지더라는 얘기인 셈.
더 작고 가벼운 제품이 나올수록 내가 갖고 있던 소지품들은 너무 무겁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소비자는 선택의 폭이 넓어져 좋고 기업은 매출 실적을 올릴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 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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