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참 복

2006-08-2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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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시작했던 목회자로서의 경력은 일년이 채 못되어 끝이 났다. 애초 교회 개척을 할 때 적어도 몇 교인들은 어떤 목사 한 분을 염두에 두고 시작을 했는데 그 분에게 얼마 전에 정식으로 목회를 인계시켜 줄 수 있어 나의 역할은 종결된 것이다.
나는 90년대에 직장생활을 계속하며 수년에 걸쳐 주로 야간에 신학교를 다니며 신학석사(Master of Divinity) 과정을 70여 학점 이수한 적이 있다. 그동안 교회에서 봉사하며 성경공부를 인도하든가 새벽기도회나 수요 집회의 설교를 몇 달씩 한 적은 있었어도 주일 설교를 일년 가까이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의 신학은 나와 내 교회가 있어 이 세상과 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세상과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죽어 천당 가려고 교회 안에서만 바둥거리는 것은 우리와 세상을 만드신 분이 보시기에 참 한심할 것 같다. “주님의 뜻이 하늘에서 실현된 것 같이 땅에서도 실현되옵소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통치’ 즉 천국(Kingdom of God)이 실현되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 죽어서 천국에 포함될 것이라고 믿기에는 무리가 있다.
나는 처음부터 말씀을 열심히 공부하고 성심껏 전달하는 것을 우선 순위의 제일 위에 올려놓고 이를 위해 몇가지 원칙을 정했는데 그중 하나가 성경본문을 반드시 원어로 읽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교인들은 나의 설교가 점점 좋아진다고 말은 하면서도 간절히 목사를 고대하는 것이 기이했었다. 나는 무보수로 봉사를 하니 헌금의 거의 전부를 구제나 선교에 바칠 수 있으나 목사를 모시면 사례를 해야하는데 그 큰 부담을 할 형편도 되지 못하면서 왜 꼭 목사가 해야 한다고 생각들을 할까? 안수를 받은 목사라는 것 외의 무엇이 또 있는가?
그 외의 무엇이 있었다. “식사를 준비하신 손길에 크신 축복이…” “사업체를 교회 장소로 제공하신 집사님 가정에 크신 축복이…” 그전에는 그리 느끼지 못했는지 이분이 특히 심한지 말끝마다 복을 내세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값싼 축복 같은데 교인들은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았다. 한국 교인은 복을 받기 위해 교회에 나오고 한국 교회는 교인들에게 복을 주는 것이 사명인가?
내가 그동안 축복의 말이나 기도를 몇 번이나 했나 생각해 봤다. 한번도 안 한 것 같다. 이 세상이 나로 인해 조금 더 좋은 세상이 되면 그것이 바로 나에게는 복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없이는 내가 이 세상이 조금 더 좋은 세상이 되도록 기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복의 세일즈맨으로 출세하기는 글렀다.
그러나 더 좋은 세상과 사회가 되도록 기여하는 것은 어렵고 막연하고, 목사로부터 복을 받는 것은 쉽고 구체적이다. 그러니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나’ 중심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나, 내 집, 내 자식, 내 가게, 내 교회… 헌금과 봉사도 세상이나 교회를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은 ‘나’ 복 받기 위해서다. 하나님과 이웃보다 자신을 더욱 사랑하는 것은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가 다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곧 ‘죄’이고 우리는 그래서 모두 ‘죄인’이다.
사실 목회 기간중 복은 내가 제일 많이 받은 것 같아 슬그머니 미안한 생각이 든다. 신학교 다닐 때 돈 아깝게 생각 않고 사 모은 온갖 자료를 동원해 열심히 말씀을 공부하고 그것을 평신도가 이해할 만한 쉬운 말로 전할 때 나를 통해 주시는 말씀에 내 자신의 가슴 속 깊이 퍼지는 기쁨- 2억달러의 로토를 탄 사람이 이런 기쁨을 경험했을 것 같지 않다. 이것이 참 복이 아닐까.

김 영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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