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범수의 선교하는 삶

2006-08-0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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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서 만난 사람들(2)

우리를 기다리느라 이미 길게 늘어선 환자들을 보니 밤낮이 뒤바뀐 피곤도 잊는다. 의사를 만나러 하루 전부터 걸어왔다는 노인부터 이웃 마을 주민들까지…. 참, 세상에는 이렇게 아픈 사람도 많다.
그러나 중간중간 피부병 걸린 사람,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사람, 위장이 아픈 사람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통증을 호소한다. 평생 가야 의사 한번 제대로 만나볼 수 없으니 치과든 뭐든 그저 미국에서 왔다는 의사를 만나면 아픔이 가실 것만 같은 모양이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붙들고 함께 기도하며 진통제만을 처방해 주었다. 다음 번에는 다른 과 의사들과 함께 오게 해달라는 기도도 잊지 않았다.
한 흑인 할머니 환자는 치료받는 동안 계속해서 나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더니 내 손을 꼬옥 잡으며 묻는다. “이제 미국으로 돌아가면 언제 또다시 우리 마을에 와주겠수?” 나는 그 할머니의 검고 순박한 눈동자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지금 50명 모이는 이 교회의 교인이 200명 정도 되었을 때 다시 오지요. 약속합니다.”
L목사님은 지역교회를 세우고 섬기는 일에 큰 열매를 맺고 있다. 처음에 천막으로 시작한 교회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양철 교회로 바뀌고 또다시 성장하게 되면 마침내 벽돌교회로 발전한다. 그 과정에서 현지인 목회자가 세워지면 교회를 맡기고 또 다른 지역에 씨앗 심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내 교회가 아니라 주님의 교회이기 때문이다. 남아공은 다른 주변국에 비하여 잘 사는 편이다. 그러나 우리 팀이 가는 곳은 그 중에서도 소외되고 가난한 지역, 삶이 고단하고 황폐한 지역이기에 복음이 필요하고 사랑의 손길이 필요하다.
장거리 여행으로 몸이 피곤한 상태에서 환자를 보기 시작했다. 게다가 연일 밀려드는 환자를 치료하다 보니 4일째 되는 날에는 함께 간 팀들이 모두 지쳐서 쓰러질 지경이었다. 내 사무실에 찾아오는 환자들은 가장 편안한 환경에서 스케줄에 맞추어 진료하는 것이지만 선교지에서는 열악한 환경을 무릅쓰고 더 많은 환자를 보아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힘든 가운데서도 우리를 섬겨주는 현지 한국인 교회 교인들의 사랑으로 맡은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었다.
지구 반대편의 남아공은 지금 한창 서리가 내리는 겨울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으스스할 정도로 한기가 돈다. 그러나 우리에게 숙소를 제공해 주신 분들과 끼니 때마다 따뜻한 음식을 정성껏 대접한 손길에서 사랑을 느끼며 우리들은 지친 몸을 다시 일으켰다.
한 나라의 수준은 공무원들의 직업수행 태도로 판단할 수 있다. 남아공 역시 뒤죽박죽 행정체계 속에 우리 팀들의 치과 사역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치안이 어설퍼 늘 강도의 위협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먼 곳까지 우리를 이끌어 일하게 하신 분은 오직 주님이심을 믿기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기도하며 이겨나갔다. 2주가 넘도록 치과 사무실을 비워야 하는 나에게 그분은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네가 나를 위해 일하느냐? 나도 너를 위해 일하마. 네가 나를 소중히 여기느냐? 나도 너를 소중히 여기마. 사랑하는 주님, 남아공 사역을 은혜롭게 마치게 해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아멘.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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