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윤실 호루라기 호루라기의 실수

2006-07-1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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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월드컵 경기는 그 어느 경기보다도 더 많이 호루라기가 불려졌다. 호루라기가 일단 울리면 경기는 중단되고 중단된 이유 중 상당수가 선수들의 반칙에 대한 심판의 레드카드나 옐로 카드 선언 때문이었다.
월드컵은 4년에 한번 있는 게임이지만, 매일 자동차를 운전하는 운전자들에게는 경찰 차량의 번쩍이는 불빛이 일단 켜지고 난 뒤 발부 받는 티켓은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축구 선수들도 심판의 카드가 세계 무대에서 오랜 동안 훈련해온 자신의 축구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 박탈이라는 무서운 벌칙이지만 운전자들에게 교통 위반 티켓은 벌금과 시간의 손실, 심리적 부담감 등 적지않은 부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카드나 티켓은 그야말로 필요악일 것이다. 이같은 필요악을 피해보려고 선수들은 더 교묘한 반칙을 연습할 것이고 운전자들은 경찰의 적발을 피할 방법을 연구할 것이다. 최근 한국에 갔는데 많은 차량들이 네비게이션을 차에 달고 다니며 네비게이션은 계속 전방 몇 미터 지점에 카메라가 있으니 천천히 운전하라는 주의 명령을 하달하고 있었다. 운전자들은 잘 닦여진 도로에 차량도 별로 붐비지 않는 시간과 지점에 너무 많은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는 불만하고 있었다. 차량들이 달려줘야 하는데 카메라 때문에 오히려 차량 소통에 지장이 된다는 얘길 들었다. 축구 경기서도 그냥 좀 놔두면 경기도 훨씬 재미있고 골도 좀 더 나올 것이라고 말한다.
어느 편 주장이 옳은지 분간이 어렵다. 축구나 자동차 운전에서 간단한 일례를 보았지만 국가나 사회를 운용하는 측면에서도 필요악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18세기의 초기 자유주의자들은 국가나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강구했다. 이들에게는 정부나 법 제도는 필요악이었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자유주의는 오히려 반대로 정부의 역할과 기능을 강화해야한다는 주장을 한다. 정부의 확대된 역할을 통하여 제도와 구조를 개선하면 악이나 반칙이 그만큼 줄어들 것이란 전제다.
어느 편 얘기든 정연한 논리와 이해를 담고 있다. 양편 모두 자유롭고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 싶어하는 열망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양편 모두의 고민은 반칙이나 범법의 수위를 어느 정도에서 조절해야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더 근원적인 고민은 심판이나 경찰이나 법 제도가 모두 잘못될 수 있다는 위험성이다. 이번 월드컵 경기에서도 심판의 오심 판정 시비가 많았다. 경찰 티켓도 법정에 가서도 속시원한 결론을 못 얻는 경우가 많다. 더 중대한 재판이나 법 제도는 또 어떻겠는가?
박지성 선수는 “오심도 경기의 일부분이다”라고 말했다. 축구를 하다보면 심판의 오심도 경기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카드나 티켓이나 법 제도는 사회라는 경기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불완전하고 공정하지 않을지라도 그것을 통하여 내 양심과 도덕과 윤리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하여 영원하고도 완전히 공평한 법칙이 존재하며 그러한 법칙을 제정하고 운용하는 분이 계심을 이해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서양의 법 제도는 주로 영원한 심판자이시며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법이 상위법이라는 기본 전제하에 하위법 개념으로 형성되었고 인간의 이기적이고 부패한 양심에 대한 불신을 담고 있다.
오늘도 내가 부는 호루라기는 누구에게 향한 것인가? 남들보고는 반칙이라 하면서 호루라기를 열심히 불지만 내 호루라기 소리에 정작 내가 한번이라도 놀란 적이 있는가? 반칙은 누가 먼저 해놓고는…
(LA기독교 윤리실천운동 본부 실행위원)

최 상 준 목사
(얼바인한믿음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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