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 속의 부처 길동무와 똘마니

2006-07-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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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날마다 많은 말을 하고 살지만 자신이 말하는 내용 모두를 스스로가 샅샅이 알고 그리 믿어서 말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지구가 둥근지 우주 공간에서 내 눈으로 직접 본 적은 없지만 학교나 책에서 그리 배웠고, 남들이 찍어 온 사진이라는 게 있어 나도 본 적이 있는 데다가, 여러가지 정황이나 증거들로 보아 그리 믿어도 좋겠다는 확신이 들기에 누가 물으면 지구는 둥글다고 나도 말한다. 그리고 만약 듣는 사람이 이를 잘 믿지 않으면 어느 정도 조리있게 그 사람을 납득시킬 수가 있다.
그러나 여러 종교에서 말하는 교리나 설화들 중에는 예를 들어 옛날에 어떤 신이 있어 심심풀이로 무슨 재료를 가지고 이 세상을 지었다든가 하는 것들이 세계 곳곳에 많은데, 이런 얘기는 내 눈과 머리와 이치로 더듬고 짜 맞추어 그 내용을 확신하기는 어렵다. 개인에 따라 무슨 특별한 정신적 체험을 하여 그런 확신이 들거나 여러 사람들이 그렇다니까 골치 아프게 따지지 말고 그렇다고 해두자 하는 정도일 것이다.
사람이란 남들과 어울려 살아야 하다 보니 매사를 꼬치꼬치 따지며 살 수는 없고 일단 그리 믿어야 좋은 일이 생긴다고도 하는데다 그 틈바구니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앞으로 나가려면 일단 내 생각은 접어 두고 남의 생각대로, 어떤 권위에 의지하여, 다같이 남 따라 같은 말을 하며 때론 주장하고 외칠 수밖에 없다. 여러 사람이 자주 오래 그러다 보면 이치에 맞지 않더라도 정말 그런 것 같이 다 같이 믿어 버리는 정신 현상이 사람들에게는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더욱 효과적으로 나타나려면, 모시고 떠받드는 집안 어른이나 큰 형님을 더욱 거룩하고 때론 두렵게 보이도록 하여 심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기댈 수밖에 없도록 하며, 알아듣든 말든 그럴싸한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울타리를 단단히 둘러 이러한 집단 얼차려 교육 중엔 가능하면 쓸데없는 이웃들이 들락거려 무드를 깨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한데, 조폭들이나 군대라든가 좌파든 우파든 독재국가들이 국민을 내몬 행태라든가 어떤 유사 종교 집단들의 행위를 보면 수긍이 갈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져 나온 똘마니들은 뭘 물어도 자기 생각, 자기 말은 할 줄 모르고 고장난 레코드판처럼 형님이 말했다, 아버지가 그랬다 하고 조건반사적으로 같은 말만 되풀이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진리를 찾아가는 참된 종교라면, 이런 겉치레의 사람 다듬기나 조건반사적인 구호 주입이 아니라, 스스로 나의 안을 깨끗이 맑히고 밝히는데 효과를 보기 위하여 집단 생활을 하고, 이런 철저한 성찰을 해보니 반드시 세상은 돕고 건져야 하겠으니 그 수단으로서 종교도 조직화가 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에는 세 가지 보배가 있는데, 부처님과 부처님이 밝히신 진리, 그리고 그 진리를 위해 부처님을 따르는 무리가 그것이다. 이 무리를 승가라고 하는데, 이들은 진리를 찾아 길을 함께 가는 길동무, 즉 도반으로서 서로 돕고 일깨우지만, 결국은 각자가 자기 자신을 등불 삼고 부처님이 밝히신 법을 등불 삼아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 뿐, 무리의 힘에 기대어 패싸움을 하거나 교조의 말을 생각없이 되뇌는 똘마니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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