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목자 생각 “화장이 싫다”

2006-06-23 (금)
크게 작게
내가 이곳 노인아파트에 입주한 지도 6개월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런데 관리사무실에서 ‘입주자 위급시와 사망시의 응급조처’를 위하여 장지 또는 화장 여부를 묻는 서류를 받았는데, 기분도 나쁘고(?) 그리고 내가 벌써 이렇게 죽음을 앞에 두게 되었나 하며 놀라 지금까지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서류를 받은 다른 한인 노인들도 나같이 다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20년 미국 이민생활에서 공부하랴, 사목하랴, 일하랴, 그리고 아이들 공부시키랴,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어느새 칠순을 턱걸이하면서 죽음 앞에 서있다. 내가 텍사스의 미국교회에서 사목할 때 우리의 다음 단계(?)인 양로병원을 가끔 방문하곤 하였다. 어느 땐가 한 월남 할머니가 휠체어에 앉아 방문자 중에 자기의 자식들이 들어오는가 문만 쓸쓸히 쳐다보고 있던 모습을 회상하는데 나도 이 단계의 분위기에서 매일 살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 그리스도교는 신앙고백을 위하여 3대 신조의 하나인 사도신경을 예배 때마다 고백한다. 여기에 그리스도교의 기본교리가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영어로 ‘He descended to the dead(hell)’라고 되어있는 부분을 한국 개신교에서는 빼버린 것을 생각해 보려고 한다. 이것이 나의 가문의 신앙고백에 큰 변화를 준 부분이기 때문이다.
원래 나는 증조부께서 금산교회를 세워 평양신학교에서 돌아온 사위 목사에게 맡길 정도의 전통적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조부님께서도 매형 목사님과 같이 다른 곳에 개척교회를 하시다가 일찍 돌아가셨는데, 선친께서는 이때 어렸었기 때문이라 하지만 잘못된 사망관에서 묘지를 잊으셨다. 그런데 장손인 내가 반세기만에 이 묘지를 찾은 사건에서 우리 가문의 사망관에 대한 변화(개종)를 알 수 있다.
이 사망관은 믿는 신자도 죽어 묻히고, 주님의 재림 때 죽은 자가 먼저 부활하여 일어나고, 살아있는 성도도 변화하여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선다. 그래서 이때까지 영, 혼, 몸을 잘 보존하여 주님 앞에 서야 하기 때문에 화장이 싫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성공회는 ‘음간에 내리시어’ 또한 루터교는 ‘음부에 내리시어’로 번역하여 장례문화를 실재화하고 있는데 다른 그리스도 교단도 같이 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결론은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우리 노인들이 사망관을 바꾸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민생활에서 개신교 교회의 사상이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데 일년에 몇번씩 노인아파트를 방문하여 위로하고, 주일에 버스로 교회에 실어나르고, 점심을 대접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한 행악자에게 약속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위로의 말씀을 들어야하고 또한 ‘음부에 내려가셔서’ 재림 때 다시 보자는 위로의 복음을 들어야 한다.(베드로전서 4장6절)
성 바울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의 사망의 가시는 죽음에 대한 공포이며 불안이다. 시인 괴테는 ‘죽음은 풍부한 생명을 얻기 위한 자연의 수단이다’라는 시를 썼고 영국시인 엘리어트도 그리스도교의 내세관을 찬양한 시를 썼는데 이를 장례 예식에 구체화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노인들은 동무의 장례식에 가서도 망자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는 소리를 들어야지, 유가족 위로의 말로만은 부족하다. 그러면 우리 아파트의 노인들이 ‘죽음을 앞에 둔 박스’에 살고 있다는 쓸쓸함이나 불안함이 없어질 것이다. 또한 ‘화장은 두 번 죽게 한다’는 속담을 잊어버리고 주님의 약속한 낙원을 향하게 될 것이다.

김 경 덕 신부
<성공회>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