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퇴임 3년반만에 입 연 토장 전 담임 이필재 목사

2006-06-2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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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금 거절… 사택 제의도 물의 일자 취소”

교인들간 분열·오해 너무 가슴 아파

후임 결정않고 떠난 것은 교단법 따른 것
박조준 목사 권유로 갈보리교회 잠시 맡아
은퇴 후엔 LA로 돌아와 개척할 것


편안한 웃음, 검은 뿔테안경, 그 안에서 반짝이는 ‘한쪽‘ 눈동자… 4년만에 만난 이필재 목사는 세월이 비껴간 모습이다.
어린 시절 한쪽 눈을 실명한 장애인이면서 한평생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헌신적으로, 청렴하게 목회해온 이목사의 얼굴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은혜가 된다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중 한사람이었다. 2002년 8월 이필재 목사가 60세로 깨끗하게 은퇴를 선언하는 설교를 했을 때 그 내용이 얼마나 신선하고 감동적이었던지, 그 아름다운 설교내용을 직접 기록하여 게재했던 사람도 나다.
그런데 이 목사가 한국으로 떠난 뒤 토랜스제일장로교회(이하 토장)는 후임 청빙문제로 계속 불화와 분열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의 은퇴를 둘러싸고 불미스런 이야기들이 드문드문 흘러나왔다. ‘은퇴하면서 교인들 몰래 집을 사놓았다’ ‘작은 교회를 개척한다고 해놓고 한국의 대형교회로 청빙돼간다’‘박조준 목사와 모종의 딜을 했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평소 존경하던 목회자가 떠날 때 은퇴금이나 처우 문제로 교회와 불화하는 소식은 드물지 않은 일이었으므로, 그런 사례들을 모아 지난 5월5일자에 ‘목회자 은퇴비’란 제목의 칼럼을 썼다. 그중 한 구절이 이렇다.
“토랜스제일장로교회는 이필재 목사가 떠날 때 은퇴비를 지급할 계획이었으나 이 목사가 진짜 은퇴하지 않고 더 큰 대형교회인 한국 갈보리교회의 담임으로 간다는 사실과, 교인들 모르게 구입해놓은 사택 문제가 말썽이 돼 한푼도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칼럼이 나간 후 이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몇몇 토장 교인들의 항의가 있었다. 처음에는 교회비판 칼럼이 나갈 때면 으레 날아오는 공격이려니 했다. 교회문제는 언제나 프로(pro)와 콘(con)이 있어서 일단 건드리면 벌집 쑤셔놓은 것처럼 쏘이는 일이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그리고 당시 당회원이었던 몇몇 장로들의 증언과 서류들을 검토하면서 무언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많은 이야기가 왜곡됐으며 상당수의 토장 교인들이 지금까지 왜곡된 이야기들을 사실로 믿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나에게 당시 이야기를 들려준 믿을만한 소식통들(그 중에는 토장 교인, 교계 인사, 언론인, 동료 목회자들도 있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많은 오해들이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밝혀지거나 진실이 드러나는 법인데 이 목사의 은퇴를 둘러싼 소문들은 3년반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제대로 밝혀지거나 정리된 것이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왜 사실이 왜곡됐으며 진실은 무엇일까?
문제는 이필재 목사가 일체 변명을 하지 않고 떠나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 교회가 사실상 세 파로 갈라져 분쟁에 휘말리면서 이 목사에게 불만을 가졌던 소수 교인들이 고의적으로 악성루머를 퍼트린 점 등이 악재로 작용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진실에 관하여는 직접 이필재 목사의 입을 통하여 듣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칼럼이 나간 지 한달 반을 기다려 지난 13일 샌디에고 지역 연합부흥회를 인도하고 LA에 잠깐 들른 이필재 목사를 만났다. 이 문제에 대해 “무척 섭섭하고 마음 아프게 생각하지만 별로 할 말이 없다”는 이 목사를 어렵사리 설득하여 인터뷰한 이유, 내가 쓴 한구절로 인하여 문제를 덧나게 만든 것에 대한 해명과 사죄를 겸하여 뒤늦게나마 진실을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서두가 너무 길었는데 다음은 이필재 목사와 나눈 다섯 개의 질문과 답변이다.
△은퇴하면서 왜 뒷 이야기가 무성했나
▲은퇴 당시 토장 교인들이 나에게 두가지 섭섭함과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잘 안다. 왜 후임자 결정을 안 하고 떠났느냐 하는 것과 은퇴예우 차원에서 거론됐던 사택 문제가 어떻게 된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제라도 설명하는 것을 잘 받아들여주기 바란다. 후임자 문제는 당시 당회가 청빙작업을 시작했는데 담임목사가 있는 동안에는 후임자 청빙을 못하게 하는 PCUSA 교단법을 적용하며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법은 후임자 선정에서 현 담임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사실상 많은 교회들이 이를 적용하지 않고 암암리에 후임을 선정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러나 노회가 이를 금하는 공문을 보내오자 나는 더 이상 이 문제에 관여할 수 없었다. 그로 인하여 교회와 당회가 무정부상태에 빠질 수도 있음을 예상했지만 법을 어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사택문제는 어떻게 된 것인가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일이었다. 2002년 12월 교회를 떠날 때 교회에서 은퇴금을 주겠다고 했으나 내가 거절하자 당회는 ‘예우’ 차원에서 교회 가까운 곳에 집을 하나 사주겠다고 했다. 24년 목회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몸이 불편한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도 있어서 나는 그 정도 예우는 받겠다고 하고, 그러나 그 집의 소유권은 갖지 않겠으니 그곳에서 살 권리만 리스 해달라고 말했다. 이를 당회가 좋게 받아들였고 평생 리스하는 서류를 꾸미던 중, 몇 사람이 이러한 당회의 결정이 불법이라고 항의했다. 공동의회를 거치지 않은 결정이란 것이었다. 교회사택을 사는 문제는 당회의 결정사안이지 공동의회까지 가지 않는 문제였지만 불법이란 소리가 나오니까 마음이 좋지 않았다. 예우라는게 선물인데, 선물 주는 문제를 놓고 불법이니 뭐니 하면서 문제가 복잡해지자 나는 그 예우조차 받지 않겠다고 했고 서면으로 모든 것을 취소하는 사인을 했으며 모든 일이 무효화되었다. 그게 전부다.
△은퇴하여 작은 교회를 개척하겠다고 했는데 왜 한국의 대형교회의 담임으로 갔나
▲원래 나는 은퇴 후 테미큘라 지역에 작은 교회를 하나 개척할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놓았다. 당시에는 그 지역에 한인들을 위한 교회가 없었기 때문에 외진 곳에서 소박하게 목회하고 싶었다. 그런데 일이 아주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내가 은퇴 계획을 밝힌 그 설교를 했을 당시 토랜스제일장로교회에 박조준 목사의 아들이 다니고 있었다. 그 아들이 내가 물러난다는 설교를 듣고 아버지에게 바로 연락했고, 박 목사가 1주일만에 나를 찾아오셨다. 그 분은 자신의 은퇴를 앞두고 후임자를 찾고 있었다며 나에게 갈보리교회를 맡아줄 것을 부탁하셨다. 나는 이를 거절하면서 ‘나의 계획은 교단을 떠나 당회도 없고 장로도 없는 교회, 말씀만 전할 수 있는 말씀의 집 공동체를 마지막으로 하나 더 만들고 목회를 끝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랬더니 박 목사가 ‘그럼 그 말씀의 집을 내가 대신 할테니 갈보리교회의 후임이 되어달라’고 했다. 아직 나이가 60인데 10년은 더 할 수 있지 않느냐는 설득이었다. 그래서 서로 바꾼 것이다. 그걸 두고 담합이니 딜이니 하고 말한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실제로 박조준 목사는 오렌지카운티에서 ‘말씀의 집’을 인도하고 있다) 사실 갈보리교회 후임으로 가는 것에 대해 무척 고민했다. 오랫동안 떠나있던 한국에 돌아가 그곳 문화에 맞지 않는 목회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분당에 한번 가보고 나서 마음이 달라졌다. 분당 갈보리교회는 내가 바로 태어나서 자라고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닌 그 자리에 세워져있었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끌렸다.
△갈보리교회에서는 언제 은퇴할 계획인가
▲나는 현재 63세이고, 교회에서는 70세까지 맡아주길 원한다. 그러나 은퇴에 관해서는 아직 결정한 것이 없다. 갈보리교회를 떠나면 LA로 돌아올 것이다. 여기가 내 집이니까. 그리고 지금도 은퇴 후 조그만 개척교회를 할 계획을 갖고 있다. 평생 5개의 교회를 개척했고 지금도 건강하니까 마지막으로 하나 더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극심한 분열을 겪고 법정 재판이 진행중인 토장을 보는 마음이 어떤가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렇게 조용했던 교회가 여러 파로 나뉘어 싸우다가 이제 법원의 힘을 빌어야 해결되게 됐으니 정말 마음이 아프다. 나의 목회 경험에 비추어보면 지는 쪽이 이기는 것이다. 화해가 최고다. 서로 상처를 만들고 입히는 사람들이 양보하여 덕스러운 길을 찾아야 한다. 교회 안에는 언제나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으므로 무슨 문제가 생기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고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적 리더십의 부재가 이런 일을 가져왔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좋은 목회자가 오면 회복될 것이라고 믿는다.
<글 정숙희 기자·사진 진천규 기자>

■이필재 목사는 피어선 신학교와 서울장신대학교를 졸업하고
76년 도미, 텍사스 휴스턴중앙교회를 개척했으며 78년 토랜스제일장로교회에 부임해 2002년까지 목회했다. 그가 사역했던 24년동안 토장은 신자수 4,000여명의 모범적인 대형교회로 부흥했으며, 이 목사는 교회 건축을 모두 마치고 당시 800만달러의 부채를 완전히 갚자마자 은퇴를 선언, 교계에 신선한 감동을 선사했다. 2003년초 갈보리교회 2대 담임으로 부임 7,000여명의 출석교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사역하고 있다. 어린 시절 한쪽 눈을 실명, 시각장애의 어려움을 가진 그는 첫 목회를 한국 맹인교회에서 시작했고 지금도 한국시각장애인 전도협회 고문을 맡고 있는 등 평생 장애인 사역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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