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에필로그-21세기 기독교

2006-06-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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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교회에 가보면 피부가 검은 예수의 그림이 걸려 있는 곳이 있다. 그러나 누구도 이 그림을 놓고 신학적으로 옳다 그르다 왈가왈부하는 사람은 없다. 단지 저들에게는 검은 피부의 예수가 더욱 가깝게 다가오기 때문에 그런 그림을 걸어놓고 있을 뿐이다.
흰눈을 평생 한번도 볼 기회가 없는 남미 적도지방의 원주민들에게 “너희 죄가 주홍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라는 이사야서 1:18 말씀이 실감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있던 선교사는 고심 끝에 눈 대신 기미엣(원주민들이 먹는 흰쌀과 같은 주식)이라는 단어로 대체했다. 이사야서 1:18 말씀이 이들 원주민 성경에는 “너희 죄가 주홍같을 지라도 기미엣 같이 희어질 것이요”라고 기록된 것이다. 그러나 이를 놓고 사탄이 변개한 성경이라고 정죄하는 사람은 없다.
오늘날 기독교는 지난 2,000년 동안 지속돼온 전통적인 기독교 세계관에서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첫째, 기독교의 중심 축이 이동하고 있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기독교의 중심은 서구 유럽과 북미 지역이었으나, 21세기에 들어선 오늘날 기독교의 중심은 남미와 아프리카, 그리고 중국, 한국을 위시한 아시아 국가로 이미 이전됐다. 오늘날 서구 유럽에는 기독교 문화는 있으나 기독교 신앙은 찾아볼 수 없다. 기존 교회 건물들이 돈 많은 아랍인들에게 팔려 회교 사원으로 개조되고 있고, 불교와 힌두교에 심취하는 인구가 늘고있다.
반면 아프리카, 남미, 중국에서의 기독교의 열기는 대단하다. 14억 인구가 살고 있는 중국 대륙에 과연 기독교 인구가 얼마나 되는 지는 오직 하나님만 알고 계시다.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예수를 영접하고 있으며, 초대교회와 같은 놀라운 기사와 이적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21세기에는 새로운 신학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서구 유럽에서 그들의 실정에 맞게 발전돼온 사변주의적 조직신학은 아프리카나 남미와 같은 기독교 환경에 큰 의미를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7명의 아내를 두고 있다가 예수를 믿게 된 아프리카 맛사이족 추장에게는 그의 특수 상황을 설명해줄 신학이 필요하다. 에이즈와 각종 질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곳에서는 병고침의 신학이 좀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정립될 필요가 있다. 한국을 포함해서 조상숭배 관습에 익숙한 문화권에서는 예수를 알기 전에 이미 돌아가신 조상들의 구원 문제에 대한 적절한 신학적 해석이 또한 필요하다.
한인 이민교회를 포함한 한국교회는 말세지말의 이 시대에 하나님이 세우신 특별한 교회다. 지난 한세기 동안 기독교 역사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큰 부흥을 경험한 한국교회가 21세기에도 지속적인 부흥의 파도를 타기 위해서는 잡고있는 많은 것을 겸손하게 내려놓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너무도 부자가 됐다. 물론 그것을 하나님의 물질적 축복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기독교 역사를 통해 보면 물질적인 풍요는 곧 영적인 타락으로 연결됐다. 한국 교회들이 크게 부흥할 때 목사에게 소득세를 부과해야 된다는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당시 목사라고 하면 가난한 사람들의 대명사처럼 인식되었기 때문이었다.
물질로 인한 영적인 문둥병의 감염 속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영적 불감증으로 인해 유럽 교회가 그렇게 급속도로 죽게될 줄은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세우신 교회는 불멸의 교회다. 단지 그 교회를 이끌어 가는 주체는 그들의 영적 민감도에 따라 하나님께서 세우시기도 하고 때로는 던지시기도 할뿐이다.

/baekstephen@yahoo.com
백 승 환 목사
<예찬 출판기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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