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주말 책나들이 진기한 서점 순례

2006-04-2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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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같은 책 팔다 짬짬이 문화행사도 열지요

고서 100만권, 3대째 이어온 중고서점

책이 연상되는 계절이 있다. 한국에서는 흔히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사실 이 말이 시작된 것은 가을철에 유난히 서적 판매가 저조해서 출판사 관계자들이 일부러 없는 말을 만들어 퍼트렸다는 야사가 있다.
미국에서 책이 가장 많이 팔리는 계절은 대학교 개강에 앞선 8월과 크리스마스 시즌을 기점으로 하는 12월, 1월 등이다. 그런 하이시즌을 제쳐두고 보면, 겨울이 완전히 끝나고 봄이 무르익는 요즘, 4월 말부터 5월 초 사이부터 책이 본격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한다. 연말 이후 비교적 조용하던 신간들이 쏟아져 나오는 때가 바로 이 때고, 서점마다 새로운 디스플레이로 손님들의 눈길을 끌기에 바빠지는 때도 바로 봄 시즌이다. 이렇듯 서점에 발길이 부산해지는 계절을 맞아 책과의 새로운 만남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어린 시절 읽었던 ‘모비딕’ ‘피터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의 초판본을 찾아보거나, 중고교 때 밤을 새워가며 매달렸던 ‘폭풍의 언덕’ ‘분노의 포도’ 같은 명작을 영어로 다시 한번 읽어보면 전혀 다른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신작 소설이나 비소설의 경우에도 일반 서점에서 쉽게 구해지는 베스트셀러보다 절판되었거나 남들이 알지 못하는 책을 손에 넣었을 때의 희열은 독서광이 아니어도 한번쯤 느껴볼 만한 것.
지난 10여년간 반즈 앤드 노블, 보더스 등 대형 체인점에 가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나름대로의 특색 때문에 끊임없이 사랑 받는 인디펜던트 서점들이 남가주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희귀한 고서 전문점에서부터 미술 전시를 곁들인 아동 전문 서점까지 부틱 책방이라고 부를 만한 진기한 서점들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맨해턴에 스트랜드(Strand) 서점이 있고, 포트랜드에 파웰(Powell) 서점이 있다면 롱비치에는 에이커스 오브 북스가 있다고 할만큼 전국에서 손꼽히는 중고 서적 전문점이다. 비행기 격납고에 들어서는 느낌을 주는 방대한 크기의 공간이 100만권 넘는 고서로 차있다.
1934년 버트랜드 스미스(Bertrand Smith)가 영국을 오가며 모은 책으로 시작한 사업을 3대째 가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구텐버그 바이블의 팩시밀리 사진과 같은 진귀한 자료를 비롯하여 무수한 고서를 롱비치 도서관에 기증했지만, 아직도 1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컬렉션을 자랑하고 있다.
먼지 앨러지만 없으면 두세 시간 돌아보고 20달러 이하에 중고책 6~7권을 건질 수 있는 곳. 미술과 건축관련 서적이 특히 두드러지고, 오래된 컴퓨터 및 프로그램 매뉴얼도 구할 수 있다. 어떤 보물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두번 방문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다시 가서 천장부터 바닥까지 가득 메우고 있는 책장을 하나씩 들여다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70년의 역사를 지나오는 동안 이 곳을 사랑한 문인들도 꽤 되는데, ‘화씨 451’의 작가 레이 브래드베리, ‘정글’ ‘드래곤스 티스’(Dragon’s Teeth, 1942년 퓰리처 수상 작품)의 작가 엎튼 싱클레어, ‘굿바이 미스터 칩스’로 할리웃에서 각광받던 제임스 힐튼 등이 스미스 1세와 오랜 우정을 나눈 단골손님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0년, 롱비치 시에서 역사적 문화유산 건물로 지정한 이래, 관광객의 발길 또한 끊이지 않는다.
어린아이와 동행하기에는 적합하지 않고, 편안한 차림으로 방문하는 것이 좋다. 일부 서적은 상태가 양호하지만, 대부분 책 자체가 너무 오래됐거나 책장에 방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낡고 헌 외관은 감수할 생각을 미리 해둘 것. 계산대 옆에 젖은 종이타월이 마련되어 있지만 가방에 하나쯤 준비해 가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다.
240 Long Beach Blvd., Long Beach 90802, (562)437-6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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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비치시에서 역사적 문화 유산 건물로 지정한 에이커스 오브 북스. 전국적으로 손에 꼽히는 중고 서점답게 100만권이 넘는 책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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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에이커스 오브 북스는 레이 브래드베리, 엎튼 싱클레어, 제임스 힐튼 등 LA의 유명 작가들이 즐겨 찾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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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커스 오브 북스의 주인 재키.


■스토리오폴리스
동심의 세계로 이끄는 할리웃스타일 아동서점
할리웃 스타일 아동 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세련된 부틱 형식의 책방 겸 전시 공간. 독창성과 창의력이란 단어가 저절로 떠오르는 곳이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들어 주는, 그래서 함께 간 아이와 몇 시간이고 머물고 싶은 마음이 솟아난다.
작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대형 서점에서 찾을 수 없는 흥미롭고 유익한 책을 모아놓았다.
또한, 단순한 책방의 개념에서 벗어나 삽화 및 표지 미술 전시(대부분 오리지널 작품을 그대로 전시함)와 책에 적합한 장난감까지 구색을 맞춰 판매하고, 저자와 아티스트를 직접 만나는 낭송회, 춤과 노래가 있는 퍼포먼스 등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하고 있다.
4월29일과 30일에는 UCLA와 LA타임스에서 주관하는 북 페스티벌(Festival of Books) 행사가 있으며, 5월 주말에는 ‘마이 덕 웨어스 슈즈’(My Dog Wears Shoes)의 작가 매기 매이(Maggie May), ‘시스터스 그림’(The Sisters’ Grimm)의 작가 마이클 벅클리(Michael Buckley),‘조이 소피아스 빅 애플 어드벤처’(Zoe Sophia’s Big Apple Adventure)의 작가 클러디아 소피아(Claudia Sophia)와 아티스트 엘리사 스몰리(Elisa Smalley) 등과 함께 하는 놀이시간이 준비되어 있다.
시간은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 일요일 오전 11시 30분.
12348 Ventura Blvd., Studio City 91604, (818)509-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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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오폴리스의 가장 큰 매력은 삽화 및 표지 미술을 오리지널 그대로 볼 수 있다는 점. 매 주말 아이들을 위한 이벤트도 열린다.

■스카이라이트 북스
문학 이벤트 잦은 ‘LA 젊은문인 아지트’
샌프란시스코의 노스비치, 또는 뉴욕 이스트사이드 기분을 물씬 풍기는 서점이다.
한복판에 솟아있는 파이커스 나무 때문인지도 모르고, 그 나무 이파리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스카이라이트 때문인지도 모르며, 혹은 가지런히 진열된 책 사이에 편안히 낮잠을 자고 있는 주인 고양이 루시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극히 평범한 일반서점 같으면서도 왠지 나도 모르게 시집을 펼쳐 들거나 흑백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해야만 할 것 같이 문학적인 분위기가 배어 있다.
1996년 로스펠리즈 지역에 문을 연 이래, 실버레이크에서 할리웃으로 이어지는 LA의 젊은 문인 그룹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시 낭송회, 작가와의 만남 등 이벤트가 1주일 내내 열리며, 이 곳의 북클럽은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모임.
소설류, 시네마 전문 서적, 뉴에이지에서 비롯된 얼터너티브 문학서적을 특히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일반서점에서 구하기 어려운 로스앤젤리스 관련 서적과 로컬 작가들의 책을 마음껏 볼 수 있다.
5월 주말 행사로는 6일 저녁 ‘위치 브링즈 미 투 유’(Which Brings Me to You)의 공동작가 스티브 올먼드(Steve Almond)와 줄리애나 배곳트(Julianna Baggott), 7일 저녁 LA의 시인 두 사람 (Bart Edelman, Charles Harper Webb)과 갖는 시간이 마련되어 있다. 1818 N. Vermont Ave., Los Angeles 90027, (323)660-1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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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스카이라이트 북스는 로스펠리즈 예술가 지역의 언더그라운드 스토어 중에서도 가장 사랑 받는 서점이다.

■더슨스 북 스토어
Michael Dawson Gallery>
개점 101년, 3대째 운영
희귀본·절판고서 많아
1905년 문을 연, LA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다.
더슨 집안에서 3대째 운영하면서 다운타운에서부터 세 차례 자리를 옮겨 1968년, 한인타운에 가까운 지금의 라치먼트 빌리지/행콕팍 지역에 자리잡았다. 내부에 갤러리가 있어서 방문하면 한나절 시간이 부족할 만큼 볼거리가 여러 가지다.
서점에는 희귀한 책과 절판된 고서가 많이 있고, 전문 분야는 사진, 캘리포니아 역사 및 미 서부지역 관련 서적이다.
갤러리에는 앤젤 애담스(Ansel Adams), 에드워드 웨스턴(Edward Weston), 윌 코넬(Will Connell), 클러디아 쿠닌(Claudia Kunin) 등 유명 작가의 현대 사진이 전시되어 있고, 갤러리 샵에 아기자기한 선물거리가 꽤 많기 때문에 샤핑하는 데만도 따로 시간을 할애해야 할 정도.
이 곳에서 판매되는 희귀서적들은 200~300달러에서부터 수천달러까지 다양한데, 사진첩의 경우 1882년 영국의 귀부인 신분으로 요트를 타고 여행하면서 많은 사진을 출판한 레이디 앤 브래시(Anne Allnut Brassey)의 ‘타히티’(Tahiti: A Series of Photographs taken by Colonel Stuart-Wortley, 68페이지)가 1,250달러에 나와 있고, LA의 초기역사를 기록한 1935년판 ‘LA 연대기’(Annals of LA: From the Arrival of the First White Men to the Civil War 1769~1861 by J. Gregg Layne)와 같이 특정 그룹에게만 어필할 만한 역사책은 비교적 저렴한 300달러에 책정되어 있다.
이런 희귀서적은 반드시 수집가가 아니어도 박물관의 전시물을 보듯 재질과 타이프 세팅, 디자인 등을 보는 재미가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예약을 반드시 해야 하며, 수요일부터 토요일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535 N. Larchmont Blvd., LA 90004, (323)469-2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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