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능력과 여유

2006-04-1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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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타운’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고향을 방문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심장 마비로 사망하자 아들 드류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 아버지의 고향인 엘리자베스 타운으로 향한다. 낯선 아버지의 고향에 도착한 드류는 외롭고, 쓸쓸해 자신이 아는 모든 사람에게 전화를 건다. 그들 중에는 어머니, 친구는 물론 자신을 버린 여자 친구도 포함됐다.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자,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난 크래라라는 여성에게 전화를 건다. 잠시 후에 크래라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서 전화가 한꺼번에 온다. 한 사람을 기다리게 하고 다른 사람과 통화를 하다가, 그 사람을 대기시키고 다른 사람의 전화를 받는다. 이런 것을 반복하는 동안 여자친구는 매정히 전화를 끊고, 자신의 누이와도 용건만 이야기하고 끊는다. 다른 여러 사람들과 통화를 하는 동안 크래라는 불평 한마디 없이 계속하여 기다리고 있다.
그가 모든 사람과 전화 통화를 마치고 크래라가 대기 중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에는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공항에서 자기 집까지 오는 오랜 동안 불평 없이 계속하여 시간을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참아준 그녀가 감사해 자신의 마음을 열기 시작하자 대화는 끝없이 이어졌다.
우리는 바쁘게 쫓기는 세상에 살고 있다. 너무 바쁘기에 전화를 대기하는 것도 싫어하고, 심지어 교차로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것도 싫어한다.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아 바쁘게 보이려 하고, 그렇지 않으면 바쁜 척하려고 한다. 바쁘게 사는 것이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능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능력(ability) 만큼 중요한 것이 일을 할 여유(avail-ability)다.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여유가 안 되면 그 사람에게는 큰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부동산 에이전트들도 마찬가지이다. 손님에게는 몇 백개의 딜을 하며 너무 바쁜 에이전트 보다는 자신에게 시간을 할애해 주는 여유 있는 에이전트가 필요하다. 요즈음은 바쁘다고 묻는 것이 인사로 여겨지는 세상인 것 같다. 나에게도 여러 사람이 바쁘냐고 묻는다.
특히 나와 대화를 원하는 사람이 그 질문을 물어오면, 그렇게 한가하지도 않으면서 바쁘지 않다고 한다. 바쁘지 않으니 능력 없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바쁘다면 그 사람의 마음이 급해져서 속에 있는 얘기를 충분히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지만 정작 필요한 말은 많지 않고, 말을 들어주는 이도 많지 않다. 현대 사회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들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손님과 대화를 나눌 때는 말을 하기 보다는 그들의 말을 충분히 들어주려고 한다. 질문을 통해서 그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찾아내려고 한다.
그가 한 종류의 건물을 원한다고 대화를 시작해도 충분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사실 그가 찾는 건물은 다른 종류의 건물이라는 결론에 자주 도달한다. 그가 궁금한 것에 대해 질문을 하면 가장 이해하기 쉽고, 간략하게 대답해 주려고 한다. 다시 그의 얘기로 돌아가기 위해서이다.
처음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손님이 원하는 것을 알기위해 충분한 대화를 하면 나중에는 일이 수월하고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결국 처음에 여유를 갖는 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 일을 더 능률적으로 하는 것이다. 바쁘다고 일을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여유를 갖는 것이 일을 효과적으로 하는 것이다.
(213)534-3243
www.charlesdunn.com

정학정
<상업용 전문 Charles Dunn 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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