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퍼스트 레이디가 후원하는 벚꽃축제

2006-04-1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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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만 되면 워싱턴시내의 제퍼슨 기념관 일대는 인파로 메워져

일본 냄새 물씬한 잔치

3월말부터 4월중순까지 워싱턴 DC는 벚꽃으로 뒤덮인다. 도시가 꽃으로 수놓아지면 거기에 사는 사람들까지 선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튤립이 필 때 네덜란드가 지상의 천국 같은 인상을 주는 것처럼 벚꽃이 만발하면 워싱턴은 도둑도 없고 강도도 없는 평화스런 도시 느낌이다.
누가 이렇게 워싱턴 시내에 벚꽃을 심어 놓았을까. 기록에 따르면 1912년 태프트 대통령의 부인 넬리 태프트 여사가 오자키 도오쿄오 시장으로부터 3,000그루의 벚꽃나무를 선물 받고 포토맥 공원 근처(존 폴 존스 동상 앞)에 처음 심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워싱턴 시내에 벚꽃심기 캠페인을 처음 시작한 사람은 칼럼니스트이며 사진작가인 엘리자 시드모어 여사다. 엘리자(사진)는 젊은 시절 총영사인 삼촌을 따라 나가사키에 3년 동안 거주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일본 곳곳에 핀 ‘사꾸라’에 깊은 인상을 받고 워싱턴에 돌아온 후 벚꽃 심기 캠페인을 펼쳤다. 일본은 이에 호응하여 2,000그루의 벚꽃나무를 1910년 보내 왔으나 해충이 있는 것이 밝혀져 전부 불태워졌다. 그러나 태프트 대통령 부인이 DC 미화작업을 추진하자 엘리자가 퍼스트 레이디를 설득하여 도오쿄오시가 다시 벌레 없는 벚꽃을 보내와 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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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나무 밑에서 가져온 음식을 먹고있는 관광객들. 창경원 봄나들이를 연상케 한다.

벚꽃이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은 제퍼슨 메모리얼이 있는 ‘타이달 베이슨’ 일대며 그 중에서도 이스트 포토맥 팍이다. 벚꽃이 피는 것도 아름답지만 벚꽃이 지는 광경도 장관이다. 4월 중순부터는 바람이 불면 마치 눈이 날리는 것처럼 거리 바닥이 수놓아진다. 해마다 워싱턴 DC에서는 3월말부터 2주간(올해는 3월25일~4월9일) 벚꽃축제 ‘Cherry Blossom Festival’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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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기간동안 워싱턴 모뉴먼트근처 거리는 인파로 메워져 사람에 떠밀려갈 정도다.

놀라운 것은 이 벚꽃축제가 워싱턴 일본인들의 ‘사꾸라 마쭈리’ 축제와 맞물려 마치 일본문화 페스티벌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스모 경기, 일본 다도 소개, 꽃꽂이 이께바나 전시회, 스시 테스트, 일본 연극 공연, 기모노 전시회 등 일본문화 전반에 걸쳐 페스티벌이 열린다. 심지어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체리 블러섬 퍼레이드’에는 미 전국에서 자비로 올라온 마칭밴드와 일본 고유의 북춤 ‘타이코 밴드’등 갖가지 일본 민속이 어울려져 있고 ‘체리 블러섬 퀸’ 꽃차에는 일본에서 온 ‘사꾸라 공주’가 함께 타고 행진한다. 또 ‘미스 체리 블러섬’이 머리에 쓰는 크라운은 일본의 유명한 진주보석상 미키모도가 제공한 것이다. 일본은 미국의 ‘체리 블러섬 퀸’을 해마다 일본에 초청하여 전국을 돌게 하며 푸짐한 선물도 안겨 줘 미국 여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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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화를 소개하는 행사장에 동원된 워싱턴주재 일본유학생들.

체리 블러섬 페스티벌의 특징은 일본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국인들이 행사를 주관한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행사의 명예위원장이 퍼스트 레이디로 되어 있다. 올해 페스티벌 프로그램만 해도 명예위원장인 로라 부시의 축사가 맨 앞에 실려 있다. 1962년에는 재클린 케네디가 ‘체리 블러섬 자선 팻션 쇼’의 공동의장을 맡았었다. 벚꽃축제는 처음부터 퍼스트 레이디가 관여해 온 것이 다른 축제와 다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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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과 공연티켓을 팔고있는 자원봉사자들.

서양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그대가 하루 행복하기 원하느냐. 그러면 이발을 하라. 한달을 행복하기 원하느냐. 그러면 결혼을 하라. 일년을 행복하기 원하느냐. 그러면 말을 사라. 10년을 행복하기 원하느냐. 그러면 나무를 심어라.”

이 철<이사>
c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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