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윤실 호루라기 한류 바람

2006-03-2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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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가 몰아치고 있다”
알래스카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한류성 고기압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부터 불어오는 뜨거운 열대성 저기압이 일본과 중국, 대만을 거쳐 동남아시아는 물론 미국에서도 상당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류’란 말은 이제 한번 지나가는 일과성 유행어가 아니라, 아예 고유명사로 자리매김 해나갈 정도다. 월드컵 4강 진출 이후부터 뜨거워지기 시작한 한류 바람은 ‘IT 강국’과 맞물리며 스포츠뿐 만 아니라 음식, 연예계 등 다양한 대중 문화권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나라는 오랜 동안 ‘은자의 왕국’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조용하고 수줍어하고 드러내기를 꺼려하던 나라였다. 물론 나라도 빼앗긴 적이 있었고, 모진 역사의 격랑 속에서 헤쳐나가기란 너무나 어려웠다. 견딜 수 없는 수모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는 몰라볼 정도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세계 곳곳으로 한국인들은 나갔고 우리 물건은 실려나갔고 ‘한류’는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필자가 처음 미국 왔을 때 한국 제품은 백화점에서 찾아보기 어려웠거나, 있어도 싸구려 제품으로 취급받았다. 자동차도 그랬다. 그러나 요즘 어딜 가도 일본제가 한창 뜨던 시절처럼 한국제가 대우받아 한국인으로 자랑스럽지 않은 사람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쯤은 잠시 한류의 핵심과 한류 안에 담겨야 할 우리 것에 대한 점검을 해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갖자, 한국 민족은 대단하다, 한국 사람은 뭔가 있다. 한국인들은 해내는 민족이다” 등의 긍지와 자부심과 우리 것에 대한 재발견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런 자부심과 긍지가 “한국이 최고다, 세계를 한류가 주도해야 한다”는 구호를 ‘비전’으로 채택할 경우 역풍도 고려해야 한다. 비굴한 것은 좋지 않다. 그러나 거만해지는 것은 더 좋지 않다.
좀 잘 살게 되었고, 다른 나라들보다 빠른 머리와 앞선 기술과 예민한 감성으로 ‘한류’ 바람을 일으키는 것은 ‘국운 차원’에선 기쁜 일이나, 개개인의 도덕심과 고결한 인품으로 내가 속한 작은 일터와 사업장이나 가정이나 교회에서 어떤 한류를 만들어 가고 있는가는 국운 차원이 아니다. ‘국운’과 어쩌면 무관할 수 있는 내 한 사람의 진정한 사람다움의 삶을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국은 수많은 타인종들이 다양하게 자신들 나름의 삶의 방식을 채택하여 살고 있다. 그러기에 ‘한류’ 바람은 더더욱 조심스레 남들과 더불어 살고, 이해를 넓혀 가는 한류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류 바람이 삭풍 같이 헐벗은 사람에겐 더 모진 바람이 되지 않고, 봄바람 같이 훈훈하여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소망의 꽃망울들이 맺히고, 바르고 신실한 삶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 나 뿐 아니라, 이웃들도 그 열매와 과실들을 나누어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류가 우리의 어두웠던 시절 불어왔던 개화나 신식 바람, 약자를 강탈하던 제국주의의 번지르르한 겉옷이 아니라 아픔을 삭힐 수 있었던 우리네의 성숙한 자각과 공감되어지는 코드로 다른 인종과 다른 문화에게도 잘 접속되어졌으면 좋겠다. ‘한류’는 대한민국 제품이지만 온 인류를 위한 공용품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LA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실행위원)

최 상 준 목사
(얼바인 한믿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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