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신의 땅’ 히말라야! 도전엔 은퇴없다

2006-02-2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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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신의 땅’ 히말라야!  도전엔 은퇴없다

팅그리의 초원 멀리 에베레스트산이 보인다.

오,‘신의 땅’ 히말라야!  도전엔 은퇴없다

7월 하순의 히말라야 남쪽 기슭은 험준하고 우기가 한창이어서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로 가는 길은 인적이 드물다.

‘60대 청년’윤낙승·김용 박사
히말라야 산맥 등정기

60대 한인 2명이 지난해 2개월에 걸쳐 히말라야 산맥 여행을 다녀왔다. 오렌지카운티에 거주하는 윤낙승 박사(67·마취과 의사)와 김용 박사(65·항공공학)는 최근 은퇴와 함께 오랜 기간 계획해 왔던 히말라야 산맥 트래킹 여행을 성공리에 마치고 돌아왔다. 윤낙승씨는 이번 히말라야 외에도 보르네오 정글 키나바루, 콩고의 비룬가, 파타고니아, 베네수엘라 안데스 산맥 등의 트래킹 경험이 있는 전문 산악인이다. 김용씨 역시 수개월에 걸친 알래스카 트래킹 경험이 있으며 파타고니아를 포함한 안데스 산맥을 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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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낙성(왼쪽부터)씨와 현지가이드, 김 용·현자씨 부부가 네팔에서 마지막 캠프를 마치고 가이드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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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 인근.


은퇴 후 일주일만에 70일 정도 예상하고 히말라야 산맥을 향해 떠났다. 더 있어도 좋고 급할 것도 없다는 느긋한 마음으로 여행에 나섰다.
언제까지 꼭 돌아와야 한다는 제약이 없고 아직은 몸이 녹슬지 않았다는 생각에 무리를 해서라도 긴 여행을 강행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히말라야로 향했다.
7월 하순의 히말라야 남쪽 기슭은 우기가 한창이어서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로 가는 길은 인적이 드물다.
페리체부터는 온 산이 텅 비어 있고 구름과 싸늘한 부슬비가 센 강풍과 함께 밑에서부터 몰아친다.
베이스캠프는 너무나 고요하고 쓸쓸하다. 바로 밑에 있는 고락셉에서 고산병으로 구토하던 두 독일 남녀와 이들을 돌봐주는 가이드 그리고 그 오막살이집 주인이 고작 만난 사람들이다.
22세의 가이드는 루클라에서 남체까지 한번도 쉬지 않고 도망병처럼 급하게 산을 오르는 나를 보고는 다음날부터 아예 쉬겠느냐는 말도 없이 하루 10~12시간 강행군이다.
걸으면서 먹고 마시고 다시 걸었다. 과묵한 가이드는 불평 한마디 없어 우리를 이끌었고 다행히 고산증도 없었다.
루클라를 3시간 정도 남겨둔 팍닝에서 일찍 짐을 풀고 쉬어가기로 했다. 트래킹을 시작한지 꼭 6일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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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 말할 수 없는 히말라야의 절경은 2개월내내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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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가 농부의 야외 부엌을 빌려서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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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라스산에서 캠핑을 하고 있는 탐험팀.


아직도 남은‘고려장’굴속, 시체 썩는 냄새가…

숲속 사찰 여승, 반인반수‘에티’는 어디갔나
인적 드문 산행길… 하루 10~12시간 강행군


트래킹 시즌이 한창인 11월에는 하루에도 수백명의 등산객들로 붐빈다고 하는데 사람이 너무 없어 루클라발 비행기가 취소될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다행히 비행기는 이륙했다. 나보다 며칠 후 도착한 김용 박사 부부와 합류해 네팔 서쪽 산골에 그림 같이 자리잡은 시미코트에 내렸다. 몇 번의 비행기 취소로 하늘만 쳐다보며 날씨가 좋기만 기다리던 조마조마했던 일은 깨끗이 머리 속에서 지워졌다.
진흙과 모래로 덮인 짧은 활주로와 이를 둘러싼 정부군의 경계가 특이하다. 여기서 포터, 요리사, 가이드, 야크(yak) 몰이꾼 등 일곱 명과 일곱 마리의 야크 그리고 말로 이뤄진 팀이 고난의 산행을 시작했다.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정부군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반란군 지역에 들어선다. 한참 트래킹을 하다 보면 허름하게 지어진 산기슭 민가에 반군을 상징하는 붉은 깃발이 눈에 들어온다.
얄방사원 근처에는 마오이스트 훈련장 건물이 있는데 이런 정부 청사에도 버젓이 반군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반군들은 우리가 이 곳에 도착하기 1주일 전에 서남부 지역에서 공무원들을 다수 납치했지만 정부는 속수무책이라고 한다.
일행보다 빨리 걸었기 때문에 도착지에 다른 사람보다 1~2시간 일찍 도달하는 경우가 많았다. 네팔의 마지막 동네 힐사에 혼자 불쑥 나타나니 사람들이 쭉 둘러서 이방인을 구경한다. 말쑥하게 초록색으로 차려입은 세 명의 중국 병사가 티벳으로 건너가는 현수교를 지키고 서 있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카날리강이 눈에 들어온다. 이 물줄기는 그 유명한 갠지스강의 상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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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에서 만난 중국 군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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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킹을 하면서 자주 만나게되는 산양들.

티벳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이 곳은 완전 무법지대다. 방금 보였던 중국 병사들도 어느 집으로 들어가 버리고 사람들도 흩어지면서 갑자기 불안한 기분이 엄습해 온다.
틸다푸리, 구라젬, 짜라프랑 등은 강 근처에 자리잡고 있는 유적지이고 성지이다. 9세기부터 16세기까지 있었던 구게왕국의 유적지 짜라프랑은 당시 인도의 고아에 있었던 포르투갈의 교단이 몇번의 실패 끝에 눈 덮인 산을 넘어와 티벳 최초의 교회를 세웠다가 인근 라디크와 서쪽 티벳의 라마들이 들고일어나 결국은 파멸된 역사가 있다. 지금은 많이 훼손되었어도 당시의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는 벽화는 잘 보존되어 있다. 목재가 귀한 이 곳에 라다크에서 어렵게 들여온 건축자재와 장인의 역할이 단연 돋보인다.
겨울궁전이 올라 앉아있는 가파른 산 속은 온통 개미굴처럼 뚫린 굴이 급경사로 사방을 통과하고 있고 파놓은 계단은 풍화작용으로 거의 없어져 오르기가 너무 힘들다. 20세의 티벳 가이드는 얼마쯤 따라오더니 슬그머니 뒤로 빠진다. 위험하다는 것이다. 겁도 좀 났지만 흥분된 마음을 다스릴 수 없어 온 산굴을 욕심을 내서 돌고 나오니 온 몸이 상처투성이다. 얇은 옷으로 무리를 했다.
이 곳에는 고려장 풍습이 아직도 있다고 한다. 노인이 기력이 없어지면 절벽에 뚫려 있는 굴속에 모셔다가 앉혀 놓고 오는데 결국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숨을 거두고 독수리 같은 새들이 와서 깨끗이 살을 정리한다고 한다. 내가 겨우 기어올라가 들여다본 굴에선 아직도 썩은 냄새가 도저히 참을 수 없도록 나는 시체가 남아 있어 고려장 풍습을 반증하고 있었다.
여러 종교의 최고 성산인 카일라스산(Mt. Kailas)은 등산이 금지되어 있지만 주위는 돌 수 있다. 5,636미터나 되는 돌마라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여름에도 진눈깨비가 내릴 정도로 춥다. 불교도들은 시계방향으로, 샤머니즘의 일종인 본교도들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걷는다. 말을 타고 마부까지 대동하고 가는 부자인 듯한 본교도도 보았다.
탈초크짱포강을 따라 오다가 며칠만에 팅그리에 도착했다. 먼지투성이로 보잘것없는 동네인데 양가죽을 벗겨 쭉 늘어놓은 모습이 계속해서 눈에 들어온다. 수백마리의 양떼들이 동네 길을 꽉 덮고 지나간다.
몇 년 전에 닦아 놓은 자동차 길에 심한 먼지를 일으키면서 과속으로 랜드크루저들이 질주하는데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며칠을 걸어 올라온 길인데 걷는 사람은 우리뿐이다. 반나절이면 한 발작도 걷지 않고 베이스캠프 텐트촌에 갈 수 있으니 그 곳에 관광객들이 붐비는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롱푸사원에 들어가 스님들 틈에 끼어 앉는다. 못 알아듣는 염불이지만 스님들의 취침시간까지 오랫동안 같이 앉아 있었다.
티벳 중부에서 동쪽에 있는 트래숨쵸 호숫가에 있는 휴양지로 향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아주 다른 풍경의 숲이 호수 인근에 조성되어 있었다. 호수에 있는 조그만 섬에 100년 넘은 고목들이 울창하고 외롭게 서있는 작은 사찰에 살고 있다는 2명의 여승은 보이질 않는다.
간덴사원서부터 시작하는 살예 트래킹은 티벳에서 가장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는데 이 곳 역시 비시즌이기 때문에 골짜기가 텅 비어 있다. 특히 치투라 고개를 넘을 때는 다른 세상 같은 적막감이 엄습한다. 이 곳에서도 일행보다 일찍 걷다 보니 이 깊은 산 속에 나만 홀로 있게되는 경우가 많았다. 전설에 존재한다는 ‘에티’라는 반인반수의 짐승이 그저 전설 속에서만 있어주기 바랄 뿐이다. 이탈리아 산악인 메스너가 에베레스트 탐험 중에 실제로 그 괴수의 발자국을 여러 번 보고 이를 추적하다가 포기하고 쓴 경험담이 있는데 티벳 가이드는 한술 더 떠서 이 짐승은 실제로 존재하고 힘세고 육중한 야크도 잡아먹는다고 겁을 준다. 중국 병사들이 가끔 산 속에서 실종되는 일이 있는데 바로 이 에티의 밥이 된다고 엄포를 놓는다.
트래킹을 잠시 중단하고 티벳 수도 라사 북쪽에 있는 해발 4,710미터의 남초 호수를 찾았다. 금새 내린 눈이 호수를 둘러싸고 있다. 아늑한 병풍처럼 신기한 풍경을 만들고 있다. 그 추운 날씨에 눈을 맞으며 밤을 지낸 야크들은 아무 불평도 없이 점잖게 앉아 있다. 운명에 저항하지 않고 그저 순응밖에 못하는 순진한 티벳 사람들을 그대로 닮고 있다.
칭하이에서 라사로 연결되는 철로가 최근 완성되어서 화물열차가 시범 운행되고 있다. 곧 북경에서 라사까지 기차가 연결될 날이 멀지 않았다. 그나마 지금 이 모습도 얼마 남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이 머리 속을 감돈다.
어디를 가나 ‘티벳 해방 40주년 열렬 환영’이라는 붉은 현수막이 걸려 있다. 농노와 하류층 천민들이 지주로부터 혹사당하고 갖은 고문을 다 받다가 비참하게 죽어갔거나 마귀를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산채로 매장되었던 불쌍한 영혼들에게는 때늦은 해방이다. 이 곳에도 어김없이 불어닥친 문화혁명으로 농노와 지주, 상과하의 신분이 뒤바뀌었던 것이다.
곱게 생긴 무수한 거지들도 다수가 그 결과라고 하는데 떠나오기 전날 늦게 남은 잉여품이라도 주고 싶어 찾아간 길모퉁이에는 거지 엄마와 두 어린아이들은 이미 자리에 없었다. 몇 개월이 지났지만 이 일이 지금도 두고두고 여운에 남는다.


백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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