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6-01-28 (토)
크게 작게
절망의 한가운데서(중)

아버지와 나는 환자 대기실에 우두커니 앉아서 아버지의 이름이 불려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곁눈으로 아버지를 힐끔 쳐다보았다. 많이 힘들어하시는 것이 역력하다. 언제나 꼿꼿하시던 자세가 오늘은 많이 흐트러져 계셨다. 간간이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지만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서로가 애를 쓰고 있었다. 드디어 아버지의 이름이 불려졌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서도 의사가 오기까지 거의 1시간째 기다렸다. 아버지가 너무 힘이 드시는지 서서히 짜증을 내신다.
기다리다가 아버지를 보니 아버지가 침대에 엎드려 계신다. 엎드려 계신 아버지 옆모습을 승욱이 낳고 처음 보았다. 흰머리는 깊게 패인 이마의 주름을 살짝 가리고 있고, 햇빛에 그을린 얼굴 색깔은 한국을 떠나올 때의 그 색깔이 전혀 아니고, 손등은 완전히 나무 껍질이 되어 있고, 손톱 사이사이 지워 지지도 않은 기름때에… 도저히 내 아버지라고는 상상이 가지 않는 모습이다. ‘아버지… 아버지 모습이 왜 이래요. 왜 이리 형편이 없어요. 아버지…’
가만히 생각해보니 승욱이 낳고 난 아버질 찬찬히 보질 못했다. 내 눈엔 언제나 승욱이만 보였고, 아버진 함께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어도 건성으로 쳐다보기 일쑤였다. 이게 도대체 몇년만에 아버질 진심으로 보는건가. 내가 정말 아버지 자식이 맞나?
난 언제나 승욱이만 바라보았고, 아버진 언제나 나만 바라보고 계셨나보다. 내 얼굴에 여드름 하나까지 있고 없음을 봐주시던 아버질 이 못난 딸이 이제야 아버지에게 눈을 돌려 쳐다보고 있다. 아버지… 미안해요. 거의 6년만에 아버지를 보는 것 같아요. 그동안 왜이리 얼굴이 많이 망가지고 상하셨어요. 왜요… 아버지 옆에 서서 울지 않으려 너무 참았더니 머리에서 쥐가 날 지경이다.
인도계 여의사가 아버지 이름을 부르며 대기실로 들어온다. 처음부터 아버지의 상태를 이것저것을 물어본다. 아버진 지난번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지와 의사 소견서를 의사에게 보여주셨다. 여의사는 이것저것을 보더니 오늘 아무래도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여러가지 검사를 한 후에 결과를 말하자고 했다. 곧 간호사가 입원할 병실로 데려다 줄거라했다. 아버진 그제서야 좀 안심이 되시는지 표정이 밝아지시는 것 같았다.
“민아야! 아버지 괜찮겠제? 그냥 폐에 염증이 생겨서 그런 거겠제? 의사 소견서 들고 왔는데도 별 말이 없다 그쟈?” 난 “네… 별일 없는 것 같아요.” 아버진 “ 아~들이(아이들이) 너무 많이 기다려 우짤꼬. 욱이 뭣좀 묵윽나, 으이? 난리 피우고 있으텐데 함 가봐라 워데 있노?”
간호사가 왔다. 아버질 병실로 모시러 온 것이다. 아버지가 계실 병실은 완전 격리실이다. 아버지가 폐렴으로 남에게 전염을 시킬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격리실에 계시게 되었다. 보호자가 병실로 들어갈 때도 마스크를 써야 한다. 아버진 환자복으로 갈아입으시더니 좀 쉬고 싶으시다고 누우셨다. 누우시면서 눈을 감으며 나에게 말씀하신다.
“민아야! 아버지 너무 열심히 일하며 살은 거 니 알제? 미국에 도착한 그 다음날부터 진짜 열심히 일만 하고 오늘까지 온거 니 알제? 많이 힘이 들었나보다 내 몸이 말이다. 지난 겨울은 얼마나 추웠는지 니 아나? 아부지 이번에 검사 마치고 나가믄 이젠 쉬엄쉬엄 일할끼다. 너도 직장 잘 댕기고 욱이도 수술 잘되었으니깐 이젠 아부지 별 걱정도 없다. 알았제?”
“네, 아빠… 그 동안 너무 일을 많이 해서 몸이 힘이 들어 데모중인 것 같아요. 아버진 지금부터 휴가, 휴가예요. 하나님이 아무래도 아빠가 너무 일을 많이 하니깐 쉬라고 휴가 주신 것 같아요. 그쵸? 지금부터 아빠 휴가중이니깐 푹 쉬셔야 해요 알았죠? 집 걱정도, Bill 걱정도, 욱이 걱정도, 일 걱정도 다 접고 푹 쉬세요”

김 민 아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