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추억의 명화 ‘악인은 편히 잔다’

2006-01-2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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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일본 거대기업 부패상 해부
쿠로사와-미후네 콤비 흑백명작

둘이 콤비를 이뤄 많은 걸작을 만든 아키라 쿠로사와 감독과 배우 토시로 미후네가 다시 손잡고 만든 뛰어난 현대 도시 드라마다. 거대 기업체의 부패를 신랄하게 해부한 1960년작 흑백 영화인데 쿠로사와의 다른 작품들 때문에 빛을 못 보았다.
그러나 전후 일본의 사회문제를 파헤친 이 스릴러는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미국의 필름 느와르 형식을 혼합한 깊고 통찰력 있는 작품이다. 쿠로사와는 사무라이 영화에도 능했지만 이 영화와 함께 ‘상과 하’와 ‘길 잃은 개’ 등과 같은 전후 일본의 사회 및 범죄를 다룬 현대영화도 잘 만들었다.
바닥에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게 마련’이라는 의미를 함축한 영화는 뛰어나게 디자인한 세트가 훌륭한 결혼식 피로연 장면으로 시작된다. 도쿄의 독재적인 재벌회사 회장(마사유키 모리-쿠로사와의 또 다른 콤비)의 다리를 저는 딸(교코 카가와)의 결혼식 피로연이다. 이 딸과 결혼한 남자는 회사의 간부사원(미후네). 그가 불구의 여자와 결혼한 까닭은 이 회사와 얽힌 뇌물 수수사건에 억울하게 연루되자 빌딩서 투신자살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서다. 햄릿을 사랑하는 오필리아가 광녀이듯 미후네의 부인은 절름발이이며 미후네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치밀하게 복수 방안을 마련하는 것 등이 ‘햄릿’의 구조를 많이 닮았다.
명배우 미후네가 말끔한 정장에 안경을 끼고 경직된 태도로 복수심에 불타는 아들의 연기를 뛰어나게 해낸다. DVD 부록으로 영화평론가 척 스티븐스의 수필과 함께 영화에 나온 여러 배우들이 독재적이었던 쿠로사와의 작업에 대해 얘기하는 기록필름이 수록됐다. 영화에서 미후네의 장인이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무자비한 회장이라는 점이 미후네가 사무라이 영화에서 섬겼던 절대적 힘을 쓰던 많은 영주들과 닮았다. 와이드스크린. 30달러. Criter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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