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뒤통수 미운날은 콩나물국을 끓이자

2006-01-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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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통수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냥 짜증이 나고, 신경질이 앞서고 있었다.
이제 몇 년 만 있으면 30여년을 한집에 사는데, 갈수록 맞지 않는 일들이 어쩌면 허구헛날 똑같이 자주 터져 나오는지… 사실, 이제 살만큼 살아서 발가락만 움직여도 왜? 그런지를 알면서도 그까짓 비위하나 맞춰주지를 못하다니, 왜, 기분이 나쁜지, 어떻게 하면 좋아하는지를 정말 너무나 잘 알지만 왠지, 그 비위를 맞추려니 자존심이 상한다. 따지고 보면 자존심도 아닌데,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이해를 해주어야할 상대에게 느껴지는 자존심! 살다보니 남에겐 여유있게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가벼운 일이지만, 집사람에겐 점점 더 꼬여만 가는 것이다.
몇 시간 전에도 집사람과 한바탕 하고 여지껏 풀리지를 않아서 뒤에서 콱 하고 쥐어박고 싶은 생각이 자꾸만 든다. 난 가끔 사회보장제도가 노후대책이나, 생계유지 뿐 아니라, 세상 모든 남자와 여자들을 위하여 적어도 15년에 한번 두 번은 남편을, 아내를 바꿀 수 있는 제도가 법적으로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만일 이혼이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아무런 하자 없이 누구나 다 해야 하는 일이라면, 우와~~ 어쩌면 세상 모든 남자들(여자도 포함 어쩌면 속으로는 여자가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입밖에 낼 수 없어서 그렇지…
우리 큰 아이가 참 많이 방황을 하고 있는 시기여서(솔직히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임) 녀석에게 큰소리를 쳤다. 그런데 아니, 집사람도 그 동안 무엇이 그리도 쌓여 있었는지, 내 빽을 믿고 큰 녀석에게 함께 혼을 내는 것이었다. 나보다 한술 더 떠서 말이다. 참 이상한 것이 은근히 속에서 부아가 치미는 것이었다.
나는 부모들에게 언제나 부부는 한편이 되어야한다고, 강조하곤 한다. 부모가 자식을 교육시키는데 있어서 아버지의 권위에 어머니가 반대 깃발을 들고 나오게 되면, 이는 교육을 떠나서 부부의 대립으로 이어지고, 자식에게 경우에 따라서 부모를 이용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며, 부모의 어느 한편이 자녀를 교육시킬 때 가만히 있거나, 이를 용납하고 부모가 무조건 한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하였다.
집사람이 그래서 그러는지, 내편을 들고나서는 것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이상한 것은 집사람이 큰아이를 혼내고, 나무라는 것에 내 속이 상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결국 끼여들지 말라며, 집사람에게 눈을 획 흘기고 대립하면서 그 장면은 막이 내려졌다.
자식!!! 나는 뭐라 해도 하다못해 다른 그 누구도 내 새끼에게 뭐라 하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었나? 아무런 잘못 없는 집사람만 쿠사리를 먹고, 괜실히 화풀이까지 당하고… 미안하면서도 왜 그리도 뒤틀린 감정이 풀리지를 않는지, 남편 속 풀리라고 따뜻한 국을 끓여 식탁 위에 놓고 돌아서는 저 뒤통수가 왜 그리도 미운지 확~ 바꾸었으면, 하는 심정이 굴뚝같기만 했다.
뜨거운 콩나물국을 한 수저 떠 입에 넣었다. 수십 년을 먹어 입에 쩍쩍 붙는 그 맛이었다. ‘그래도 음식하나는… 내 입에 맞지’ 살면서 수없는 고비 고비를 넘겨오면서 어쩌면 마누라 뒤통수가 미운 날이 더 많은 듯 했지만, 집사람의 가슴에 내가 미우면서도 콩나물국을 끓이던 날은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전혀 모르는 남남이 만나서 지금까지 살면서 알콩달콩하게 산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 수없이 싸웠지만, 수없이 화해해서 지금까지 왔으니 또 다른 누군가와 수없이 싸우고, 수없이 화해할 기력도 없고, 내 입맛에 맞춘 듯한 콩나물국 때문에라도 뒤통수가 꼴 보기 싫어도, 하루 자고 나면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집사람의 뒷모습이 약간 굽은 듯도 하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듯도 하다. 남편, 아내 바꿀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 앞으로도 오래오래 이루어지지 않고, 그냥 꿈으로 남는 것이 나은 듯싶다.

한영호 <나눔선교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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