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영웅 김영옥

2006-01-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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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복도를 한참이나 돌아서 병실에 도착하였다. 아담한 방에 그 분은 눈을 감은 채 조용히 누워있었다. 딸애가 귀에다 대고 “우리 엄마 왔어요”하고 영어로 말을 거니 눈을 가늘게 뜨고 왼손을 들어 허공을 두어번 휘저으며 무엇인가 찾는 듯한 동작을 보인다. 딸애가 얼른 “엄마, 손을 달래요”했다. 나는 뜨겁게 밀려오는 감정을 누르며 그분의 노랗고 가느다란 손을 잡았다. 조금만 힘주어도 부서질 것 같은 깡마른 손이었다.
며칠 전 서울 갔다 돌아온 딸애가 책 한 권을 들고 왔다. ‘영웅 김영옥’이란 신간이었다. 나는 ‘영웅’하면 이순신 장군이나 넬슨 제독쯤 떠올리는 축인데 왜 코널 김 얘기를 쓰며 영웅이라 붙였을까? 저자가 있다면 당장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하와이에 살 때 그 곳 사람들의 자랑거리인 2차 대전 때의 하와이 출신 100대대 용사들의 무용담을 담은 손바닥만한 책자를 읽은 일이 있었다. 세계 2차 대전 시초에 일본의 기습공격으로 진주만이 완전 쑥밭이 되고 말았으니 그 보복으로 일본계 일반 주민들은 이적행위를 할 수 있다는 명목을 내세워 사막의 수용소로 몰아넣게 되었는데, 청년들이 미국시민으로서의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자원 입대하여 사병은 전원 일본계 2세였고 지휘관만 백인이었던 100대대는 구라파 전선에서 최고로 용감하고 혁혁한 전공을 세운 부대였다고, 전쟁이 끝나고 100대대의 귀환 행진이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 있었는데 마천루 꼭대기로부터 테이프와 색종이가 눈보라 치듯 쏟아져 내려오는 광경이 참으로 감동적이었다고, 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지휘관 중에 백인 이름이 아닌 Kim이라는 소대장 이름이 나오기에 나는 이상하게 생각하고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응, 그 사람 한국계 2세야. 2차 대전 때 용감한 장교로 알려져 있지. 아마 그때 계급이 좀 높았더라면 작전 장교로서 실력을 떨쳤을 텐데 대위로 전쟁이 끝나고 제대했으니까… 한국전쟁이 나자 현역으로 복귀하고 자원하여 격전지에 배치되어 잘 싸웠나봐. 전쟁 초기의 한국군은 솔직히 말해 싸울 줄이나 알았어?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큰소리만 치는데, 김일성이 선전포고도 없이 그대로 밀고 내려왔으니까 코널 김 같은 2차 대전을 싸운 연합군 용사들이 아니었다면 지도상에서 대한민국은 사라졌겠지. 부상당하고 후송된 줄 알았는데 군사고문단에 다시 나왔더라구. 두어번 만났는데 조용하고 겸손한 사람이더군” 남편은 자기가 아는 대로 대강 말해주었다.
2~3년 전 USC에서 코널 김에 관한 영화를 상영한다고 불러주기에 가보기로 했다. 학교 강당에서 하는 학예회 같은 것을 상상하고 갔는데 극장 문을 여는 순간 재향군인 제복을 입은 동양인 할아버지들이 자리를 메우고 서로 반기며 화답하는 광경이 시야를 막았다. 그랬다. 그 자리는 바로 100대대에서 아직껏 살아남은 용사들의 재회의 마당이었다.
미정부는 근래에 와서 2차 대전 때의 전공을 재검토하여 100대대 용사들에게 최고 훈장을 수여했는데 코널 김은 제외되었다. 특별한 공을 세울 때마다 사령관이나 직속 부대장이 직접 그 자리에서 건네주는 훈장이 누구보다 많은데 그것들을 하나하나 서면으로 기록하여 상부에 올리도록 되어 있다 한다.
그런데 코널 김은 성격상 자랑하거나 꼼꼼하게 챙기기보다 쑥스러워하고 겸손한 성품인지라 “내가 혼자 싸운 것이 아닌데, 부하들이 있었기에…” 하며 오히려 자기 혼자 받은 것을 미안해하며 그 숱한 훈장들을 박스에 담아 차고 한 구석에 처박아 두었더라고 하니, 60년이 지난 지금 기록에 올라와 있지 않은 상태에서 귀한 최고 훈장을 함부로 줄 수는 없었겠지 싶다.
누구보다도 미정부 최고훈장 감인데 그렇게 됐으니 당시의 부하들, 전우들이 뭉쳐서 코널 김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정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한다. 즉 그 날 그 자리는 100대대 부하들이 과거의 상관에게 바치는 보은의 한마당이었는데 나는 영문도 모르고 동참하게 되어 참으로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영웅 김영옥’ 책 표지에 저자는 이렇게 간추려서 적고 있다. “한국, 프랑스, 이탈리아 최고무공훈장 수훈, 미군 전투교본을 다시 쓰게 한 전설적 작전장교, 한반도 휴전선 60km 북상의 주역, 국경을 초월한 영원한 인도주의자, 여성 아동 빈민 등 사회적 약자의 수호자, 한국인임이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의 아들” 저자는 코널 김이란 한국의 아들이 왜 영웅인가를 끈기 있게 하나하나 발로 취재하고 흥미진진한 다큐멘터리로 꼼꼼하게 풀어 보이고 있다.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 코널 김이 지난밤에 가셨어요” 딸애의 목소리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순련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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