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 아버지의 기침소리

2006-01-14 (토)
크게 작게
승욱인 UCLA의 스피치 시간에 점점 적응을 하고 있다. 스피치 선생님은 매번 갈 때마다 새로운 소리로 승욱이를 자극한다. 화장실 물 내려가는 소리, 기차역의 안내원 소리, 아이들 웃음소리,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 소리, 자연의 새소리, 자동차 경적소리, 소리… 소리… 여러 가지 소리를 들려주고 승욱이의 반응을 지켜본다.
승욱이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인지 어떤 소리에는 아무 반응이 없다가 어떤 소리에는 자지러지게 웃는다. 깔깔대고 웃을 땐 정말이지 완벽하게 듣고 있는 아이 같다. 기차역의 안내원 소리를 들려주면 떼굴떼굴 구르면서 웃는다. 가만히 보니 승욱인 유독 저음에 강한가 보다. 기차역 아저씨의 굵직한 저음의 “신사숙녀 여러분 다음 정차하실 곳은…” 이라고 나오면 여지없이 웃음을 터트린다.
승욱이가 웃으니 나도 옆에서 웃음을 못 참고 있다. 들어보면 전혀 웃기지 않은 소리도 승욱이가 웃으면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는 것이다. 그게 바로 모전자전?이란 걸까?
UCLA의 스피치가 끝나는 시간의 교통은 거의 마비상태이다. 프리웨이 405번과 10번은 정말이지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집에 도착하면 승욱이와 난 완전 파김치 상태이다.
승욱인 언제나 집으로 오는 길에 잠에 빠져든다. 하루종일 학교로 UCLA로 녀석도 많이 지치나보다. 승욱이가 차를 타고 오면서 잠을 자면 승욱이의 잠자는 시간은 또 완전히 바뀐다. 스피치를 배우고 오는 날이면 밤잠도 못 자는 날이 태반이다.
UCLA에 다녀오는 날엔 아버지도 어머니도 우릴 기다리고 계신다.
승욱이가 가서 뭘 배우고 왔는지 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너무 궁금해하시기 때문이다. 난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오늘은 승욱이가 어쨌구 저쨌구… 주저리주저리(약간의 거짓말을 보태서… 그래야 부모님이 좋아하시니깐… 선의의 거짓말…) 그날 승욱이가 웃은 이야기며 선생님이 칭찬을 많이 했다는 이야기를 하면 어머니 아버진 곧 승욱이가 말을 할 것 같다며 나보다 더 기대가 크시다.
밥상에서 밥알을 튀기면서 말을 하는 내 앞에 아버지는 요즘 들어 잦은 기침을 하신다. 승욱이가 와우이식을 하던 2월에 우리 교회에서는 ‘목적이 이끄는 40일’ 캠케인을 했다. 아버진 그 기간을 통해서 오래도록 피우시던 담배를 완전히 끊어버리는 결단을 하셨다.
온전히 성령 체험을 하시고 아무런 거리낌없이 단번에 담배를 끊으셨다. 오랫동안 담배를 끊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셨지만 번번이 실패를 하시더니 이번엔 정말 큰 결단으로 담배를 끊으신 것이다.
승욱이가 UCLA에 다녀오는 날이면 영락없이 밤낮이 바뀌는 바람에 요즘 들어 나 역시도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다.
승욱이와 실랑이를 하며 침대에서 뒹굴고 있으면 옆방 아버지의 침실에서 들려오는 마른 기침소리가 무겁게 내 마음을 친다. ‘너무 오래도록 피던 담배를 끊으셔서 아마도 명현 현상으로 기침이 나오는 걸 거야’ 스스로 아버지의 기침소리에 진단을 내리고 승욱이와 씨름을 계속하고 있다.
아버지의 기침소리가 얼마나 슬픈 소리였는지, 얼마나 가슴아픈 소리였는지, 얼마나 억장 무너지는 소리였는지 그건 그땐 몰랐다.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잠언 22:24-26)
김 민 아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