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두레마을 이야기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2006-01-0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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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의 마지막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맏잇맏>맞잇맏’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맏’이라는 말은 처음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맏잇맏’이라는 말은 ‘처음을 잇는 처음’이라는 뜻이지요. 어떻게 보면 끝이라는건 애초에 없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고, 처음과 끝이라는 개념은 사람이 설정해 놓은 틀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새해라는걸 볼 때 마음이 이전에 머물러 있는 저같은 사람에게 새해는 애시당초 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마음이 새로우면 별볼일 없는 날들도 새로운 날이겠지요. 마음이 새로워지시길 빕니다.
새해 첫날, 로마의 감옥에 갇혀있던 바울이라는 사람이 빌립보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냈던 편지, 빌립보서를 읽었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기대하고 바라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고, 또 바울 스스로가 자신에게 바라고 원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이것입니다.
‘내가 간절히 기대하고 바라는 것은 내가 어떤 일에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전과 같이 지금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나의 몸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되시는 것입니다’
희망이라는 말은 ‘바라고 또 바란다’는 말이고, 바램이라는 말은 마음에 소원을 갖는다는 말입니다. 히브리말로 ‘창조한다’‘짓는다’는 말이 한국발음으로 ‘바라’입니다. 지나친 해석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저는 같은 의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희망이 없는 사람은 무엇을 할 의지가 없습니다. 이는 희망 없는 사람은 창조적 활동이 없다는 말이고 이를 다시 말하면 창조적 활동이 있는 사람은 희망을 갖고 있다는 말이겠지요.
지난 한해를 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니 지난 살아온 날들을 생각해 보면 저는 제 삶 속에 부끄러운 일들이 많이 있었음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하나님과 자연 그리고 사람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부분이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무엇인가를 자꾸 감추려고 하면 할수록 그것이 내 앞에 덧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자연, 그리고 사람 앞에서 거짓이 없는 사람은 그 천성과는 관계없이 담대함을 유지하며 살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저는 두레마을에서 일하면서 많은 분들로부터 고생이 많다, 보람되겠다는 말을 들을 때면 늘 부끄러운 마음을 갖습니다. 왜냐하면 아무 대가 없이 이렇게 한다면 그 말을 들을 자격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저는 월급을 받고 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이곳에서 월급쟁이로서의 삶이 아니라 주님을 기쁘게 하는 쪽으로 삶이 넓어지길 기대할 뿐입니다.
두레마을에서 유기농업에 기초하여 노동을 하고 몸과 마음이 아픈 분들이 방문하여 함께 지내는 것들은 모두 주님을 기쁘게 하는 일임에 틀림없으나 사심 없이 할 일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돈을 위해서라든지, 명예를 위해서라든지, 권력을 위해서 한다면 그것은 하늘의 일을 자신의 것으로 가로채는 일일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 있는 두레마을에 올 때 사심도 많이 있었습니다. 농촌목회 12년을 하면서 느꼈던 답답함과 한국 상황의 답답함도 벗어나 보고자하는 마음이 있었고 아이를 좀더 자유스럽게 교육시키고 싶은 마음, 그리고 이곳에 오기 전까지 살았던 일들을 좀더 여유 있는 가운데 바라보고자 했었지요. 미안하게도 사명감을 가지고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언어의 어려움이나,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해 겪어야 했던 어려움, 인간관계에서 왔던 어려움, 뜨거운 기후에 적응하면서 이곳의 농사를 익히면서 생긴 어려움 등은 모질게 이민살이를 하신 분들을 보면 아무 것도 아니더군요. 저는 단지 어려운 일들을 당할 때마다 거기에 무슨 뜻이 있는가를 보려고 했고 내게 주어진 문제들을 제 나름대로 풀어보려고 했지만 아직은 길이 먼 것 같다는 생각뿐입니다.
위의 말씀은 바울이 자신이 어려운 처지에 빠졌을 때 스스로에게 기대하고 바랐던 내용들입니다. 바울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여유와 자신감이 있는 반면 저는 여유도 별로 없고 자신감도 크게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올 한해 이 말씀을 붙잡고 길을 가고자 합니다. 그래서 올 한해의 길이 험하고 고달프더라도 주께서 주시는 기쁨을 누리고 여유와 자신감을 회복하는 한해이길 스스로에게 기대하고 바라봅니다.

조규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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