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숙희 기자의 주방일기

2005-12-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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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여행

크리스마스 바로 전 주에 한 주일 휴가를 내어 세 식구가 하와이로 여행을 다녀왔다. 한 주씩이나 몰아서 휴가를 낸 것도 몇 년만에 처음이거니와, 우리 가족이 미 본토를 떠나 4박5일이나 여행한 것도 처음이라 한달 전부터 몹시 설레고 기대가 컸다.
처음 여행을 계획하면서부터 시즌이 겨울이라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았었는데 체인 리조트 사용권(time share)을 갖고 있는 한 친지가 하와이 코나(Kona)의 리조트를 일주일간 통째로 빌려주는 바람에 더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곳으로 행선지를 정했다.
세 식구 비행기 값에 렌터카, 식비, 스노클링 오락비, 샤핑 비용 등 경비가 상당했지만 여행을 강행한 이유는 다음 주면 열다섯살이 되는 아들이 우리와 함께 가는 마지막 여행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들이 2년전 바로 이곳으로 보이스카웃 여름 캠핑을 일주일이나 다녀왔다는 사실이었으니, 하고많은 세상의 여행지들 중에 또 거기를 가야만 하는 가로 얼마간 고민을 하였지만 아들도 좋다하고 우리는 가본 적이 없는지라 그냥 계획을 진행하였다.
하와이는 지금이 피크 중에서도 하이 피크 시즌이었다. 낮이면 80도가 넘는 더운 날씨에 여름이면 높은 습도가 겨울에는 많이 내려가 매우 쾌적한 여행 환경을 제공하는 탓이다.
우리가 간 곳은 하와이의 4개 섬들 중에 가장 큰 빅 아일랜드 ‘하와이’(Hawaii) 섬으로, 아직도 화산이 살아있고 용암이 분출되고 있는, 그리하여 섬의 크기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신비한 곳이었다.(보통 사람들이 하와이라고 말하는, 와이키키와 호놀룰루가 있는 섬은 실제로는 ‘하와이’가 아니라 ‘오아후’(Oahu) 섬이다)
섬 전체를 자동차로 도는데 6시간 남짓, 곳곳에 용암이 흘러내려 굳어진 암석들이 광활한 검은 대지를 형성하고 있으며, 23만 에이커에 달하는 화산국립공원(Hawaii Volcanoes National Park)을 돌아보면 지구와 자연의 신비에 절로 감탄이 흘러나오는 곳이다.
놀라운 것은 하와이의 모든 섬들이 화산 분출에 의해 생성된 지형으로 시꺼먼 용암석과 바위, 흙이 땅의 주성분인데 그곳에서 울창한 삼림과 열대림이 조성된다는 사실이었다. 검은 대지 바로 옆에 새파란 잔디와 나무, 꽃이 피어나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무식한 우리는 매우 이상하다며 계속 감탄을 하였지만 아들의 설명으로는 용암에는 원래 많은 자양분이 들어있어서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깎아지른 절벽과 파도가 이루어내는 비경도 보고, 용암으로 인해 이루어진 검은 모래사장(black sand beach, 백사장이 아니라 흑사장이다)에서 놀기도 했으며, 해변에서 쉬는 거북이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사진을 찍었고, 우연히 발견한 열대우림을 걸으며 모기에 엄청 뜯기기도 하였다.
또 코나 커피가 유명하다 하여 오개닉 커피 농장을 일부러 방문하였다. 커피나무와 열매를 처음 본 것도 신기했지만 그곳에서 금방 볶아낸 원두로 끓여 마신 커피는 절대로 잊지 못할 맛으로 지금도 혀끝에 느껴진다. 마카다미아 넛(Macadamia nut) 공장에도 들러 맛있는 너트를 박스 째로 샀으며 이곳 저곳 관광지도에 좋다고 표시된 곳이 있으면 빼놓지 않고 들르느라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선을 피웠다.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날 있었던 스노클링과 고래구경이었다. 배를 타고 45분이나 떨어진 산호초(coral reef)에 당도, 발에 물고기 갈퀴를 달고 머리엔 큼직한 안경과 숨쉬는 통을 달고 뛰어든 바다 속에서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수면 바로 아래 셀 수 없이 많은 노랑색, 빨강색, 파랑색 무늬가 현란한 물고기들이 평화롭게 헤엄치는 광경, 발이 닿을 듯이 가까운 해저 바닥에 각종 산호들이 제각각 모양을 뽐내며 자라고 있는 모습, 살아있는 것들 중 그렇게 예쁘고 아름다운 풍경은 처음 본 것 같다.
이 모든 것을 2년전 다 해본 아들은 제법 쿨 한 척하며 우리의 가이드 역할을 도맡아했다. 얼마전 박찬호가 결혼한 섬, 매년 철인 3종경기가 열리는 섬, 인구가 17만명이나 되지만 닷새동안 경찰차 한 대도 보지 못했을 정도로 평화로운 섬, 너무도 착하고 순박한 원주민들의 모습이 우리를 편안히 쉬게 해주었던 하와이섬은 분주했던 2005년 한 해를 떠나보낸 특별한 여행지로 언제까지나 기억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참고: 주방시설이 완비된 투베드룸 리조트에서 우리는 쌀과 각종 식재료를 사다가 세끼 밥을 완전 한식으로 해먹었고 라면을 두번 끓여먹었으며 세끼만 외식을 하였다. 내 팔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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