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얄궂은 산타의 비애

2005-12-2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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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저 높은 하늘에 훨훨 날아서 어느 집 굴뚝으로 속으로 쑥 들어와선 장난감 기차, 인형, 달콤한 캔디… 종합선물세트를 밤사이 살짝 놓고 간다는 그 산타를 난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는 “애새끼가 쓸데없는 소리만 지껄이구 있구네. 거 쓰잘데기 없는 소리 말라우. 싼타는 무슨 놈의 싼타, 그딴 게 어디 있누? 허풍치지 말고 자빠져 자라우.”하며 냉정하게 여리고, 어렸던 나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었다.
그 당시 난 그래도 무척이나 순진했었다. 친구들이 산타 어쩌구저쩌구 이야기를 하면, 혹시나! 우리 집에도 산타가 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단 한번도 그런 일이 없었다. 산타가 주소가 없어서 못 찾은 것은 아닌지. 아니면 굴뚝이 작아서 뚱뚱한 산타가 들어올 수 없었던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착한 일을 한 아이들에게만 산타가 온다는 사실을 알았고, 난 결코 착한 아이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체념을 하긴 했어도… 일생에 한번도 산타의 선물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내 어린 마음에 커다란 상처가 되었었다. 물론 후에 산타의 역할을 부모님이나, 식구들이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땐 더더욱 상처가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한번쯤은 할아버지가 초컬릿 봉지라도 머리 위에 놓아주었다면, 어린 마음에 얼마나 위로가 되었을까! 이렇게 생각할 때 할아버지가 무척이나 원망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우리 아이들이(참고로 나는 네 명의 자녀가 있다. 주루룩 달고 나가면, 멕시칸처럼(절대 인종을 비하하는 것은 아님) 보인다고들 한다) 어릴 적에 다른 것은 제대로 못해줘도 산타의 역할은 해주어야지,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렸을 적,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큰놈이 좋아하는 것, 작은놈이 원하는 것, 셋째가 갖고 싶어했던 것, 넷째가 졸라대던 그 선물들을 목록에 써놓고선 잠자는 녀석들 침대 위에 올려놓곤 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들이 그 선물을 보며 흥분하고, 좋아하는 모습…
“니들이 착하니까 어젯밤에 산타가 와서 선물 주고 간 거다. 알았냐? 알았으면 더 착한 일해야지. 내년에도 산타가 오지.”
큰 녀석과 작은 녀석은 이미 아빠가 산타임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미리 내년 것을 예약하곤 했다. 이미 알만한 시기였으니… 나도 모르는 척 넘어갔었다. 그러나 우리 막내 계집애가 막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던 그때, 녀석이 친구들과 하는 이야기를 유감스럽지만, 내가 들어버리고 만 것이다.
“너는 무슨 선물 받았니?” “나는 바비 인형 받았다. 너는 뭐 받았는데?” “나는 헬로 키티 가방. 그런데 난 핑크가 좋았는데 우리 아빠는 핑크를 싫어하나 봐. 스카이 블루로 사왔다.”
아니, 이럴 수가… 분명 그 헬로 키티 가방은 산타가 사와야 하는 것인데 아빠가 스카이 블루로 사왔다니… 그렇다면, 녀석이 산타의 비밀을 눈치챘다는 것이었다.
난 너무나 충격이었다. 분명 나는 초등학교 때까지도 산타가 순록을 타고 다니는 것을 믿었었는데 이제 겨우 유치원생이 감쪽같이 나를 속이고 있었다니… 사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산타가 누구인지를 알면서도 말을 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이의 친구가 가고 난 물어보았다. “아름아, 산타가 갔다준 가방이 마음에 들지 않니?” “아니, 마음에 들어.” “마음에 안 들면 안 든다고 해” “아니. 괜찮아.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산타가 다음에 아무 것도 안 주잖아. 산타가 다 듣고 있단 말이야.”
우와~~ 시치미를 떼는데 과연 저게 앤가? 어른인가? 요즈음 애들은 다 그런가?란 생각이 들었었다. 이후론 난 산타의 역할을 집어치웠다. 괜스레 나만 속아넘어간 것 같아서 기분이 영 찜찜하였던 것이다. 아마도 우리 할아버지도 이런 느낌을 느끼기 싫어서 일찌감치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자빠져 자라우”라고 하지 않으셨을까?
순진한 어린아이의 모습이 그립고, 산타를 기다리는 마음이 그립다. 얄궂은 산타의 비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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